▲보리암 대웅전과 무쇠솥, 석등이 있는 풍경
이승철
모두들 발걸음을 재촉하여 암자로 향했다. 암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길가 바위 밑에 서있는 두 개의 비석이 눈길을 붙잡는다. 그 중 하나의 비석에는 '충장공 김덕령장군 배, 정경부인 흥양이씨 순절비'라 새겨져 있다. 이곳이 바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이씨 부인이 왜군에게 쫓기다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순절한 곳이었다.
보리암은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대웅전 마루 밑 댓돌 위에서 졸고 있을 뿐 고즈넉한 풍경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암자는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댓돌 아래 마당에는 그 유명한 무쇠솥과 함께 석등이 세워져 있었다. 절벽 쪽 마당가에는 대나무울타리가 세워져 있다.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골짜기와 산자락에는 아직도 단풍이 한창이다. 담양호의 물빛도 고왔다.
"작은 산이라고 얕봤는데, 아휴 힘들어"다시 길을 나서 정상을 향했다. 역시 급경사 계단 길이다. 보리암 뒤편 산꼭대기는 '보리암정상'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준비해 가지고 오른 과일 한쪽씩을 나누어 먹으며 둘러보는 주변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추수가 끝난 텅 빈 들녘과 함께 담양호 건너편에 있는 금성산성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저 아래 담양호 풍경 좀 봐? 모양이 별처럼 생기지 않았어?""어, 정말 그렇네, 별이 아니라 불가사리 모양 같기도 한데, 허허허."급경사 계단을 오르느라 땀을 흘린 일행들이 가슴을 풀어헤치며 모처럼 여유로운 웃음을 터뜨린다. 꼭대기와 능선길의 나무들은 모두 잎이 져버려 앙상한 줄기와 가지만 남은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시계를 보니 낮 12시 10분이다. 오르는데 2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잠깐 앉아 땀을 들인 후 다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