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을 갖다주고 껍질을 벗겨주기 까지..
김영희
"호박을 푹 삶아서 뭣을 넣는 것이 좋아요? 누구는 밀가루를 넣으라고 허든디." 회관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또 호박죽 타령을 했다.
"손님 대접할라먼 찹쌀가루를 넣어야제". "찹쌀가루 덩글덩글 넣어. 씹히는 맛이 있어야해." "새알심도 좀 넣고 그러면 좋아.""아 호박 이리가져와. 낼 아침에 혼자 쑤지 말고 여그서 놀면서 아조 써 가꼬 가."한마디씩 하다가 답답한지 아예 호박을 가져오란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얼른 집으로 뛰어가서 호박을 가져왔다.
"그런데 찹쌀가루는 있어? " "마른가루가 있어요"내 대답을 듣던 부녀회장이 부르르 나가더니 금세 봉지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이것 내가 찹쌀가루 빻아서 냉동에 둔 것이여. 선물로 줄텡게 이것 넣어."사양도 못하고 염치없이 받았지만 세상에 이런 선물이 또 있을까. 흰 찹쌀가루가 찹쌀가루가 아니라 희디희고 곱디고운 마음이다.
다른 때 같으면 저녁 먹고 나서는 다들 집으로 가는데 오늘은 부엌에 안쳐 놓은 호박 익기 기다리느라 밤이 늦도록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