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불가' 외치는 정부와 여당
시민사회 '중재'에 찬물 끼얹나

새누리, 종교·시민사회 '대화' 요청에 원론적 답변... 실무교섭 '먹구름'

등록 2013.12.26 20:34수정 2013.12.2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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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 스님·인명진 목사, 새누리당에 철도파업 해결 '대화기구' 제안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과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26일 오후 국회를 방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철도파업 사태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인 대화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 남소연


"철도노조 파업을 풀 수 있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달라."

새누리당을 찾은 종교·시민단체 인사들의 요구였다. 그러나 시원한 답변은 없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등 여당 지도부는 26일 오후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 등 '철도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사회적 대화 모임'과 만나, 철도노조 파업 사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앞서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철도파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철도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즉, 도법 스님 등이 이날 새누리당을 방문한 까닭이 특위 구성에 동참, 혹은 주도해달라는 뜻이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이날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철도노조의 빠른 업무복귀를 설득하고 철도민영화에 대한 노조와 일부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 테이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한 새누리당의 주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이에 황우여 대표는 "새누리당과 정부를 믿고 철도노조는 신속하게 업무에 복귀하기를 희망한다"며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이번 사안은 절대 민영화가 아니다, 다만, (자회사 설립 후) 근로조건 등을 포함한 노조의 걱정과 우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론이 딱히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회적 논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었다. "상임위나 국회 차원의 테이블을 마련한다는 방법 없었느냐"는 질문에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참석한 또다른 의원은 "그 분들도 구체적으로 말하시지 않으셨다,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이라는 것이 쉽겠느냐"라고 말했다.

코레일 노사가 이날 오후 조계종 화쟁위원회의 중재로 13일 만에 마주 앉으면서 조심스레 점쳐진 사태 해결 가능성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편 가르지 말고 대화해야 대통합 가능"

이처럼 양측의 대화가 헛돌게 된 이면에는 이번 사태 원인에 대한 인식 차가 컸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모든 방법을 다해서 (철도) 민영화의 길을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아야 하지만 경쟁체제, 경영의 합리화와 정상화, 그리고 효율화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면서 "(정부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고육지책이요, 국가 발전을 위해서 피치 못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면담에 참석한 다른 여당 의원들도 "이제는 철도산업의 비효율성을 바로 잡아야 할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 철도노조도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KTX 민영화라는 괴담이 국민을 혼란케 하고 있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는데 시민사회단체도 협조해달라"고 밝혔다.

반면, 도법 스님은 "(철도노조 파업은) 단순히 철도문제 하나의 사안이 아니다, 한국 사회 전반이 갈가리 찢겨지고 서로 적대시하면서 힘겨루기 방식으로 문제를 다룬 결과, 끊임없이 분열되고 분노와 두려움이 재생산되고 황폐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도법 스님은 "서로 편을 갈라 나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대화해서 관계되는 사람들과 국민들의 마음과 지혜를 모아서 합리적으로 균형 있게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괜찮겠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 통합적으로 바람직하겠네, 그렇게 해야 대통령께서 말씀하신대로 국민을 통합하고 국민 행복시대를 열어가는 것도 가능하겠네'라고 문제가 다뤄지길 바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도노조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무관한 민영화 문제를 제기하며 '불법파업'을 하고 있다"는 새누리당의 입장과 "오해가 있으면 서로 대화를 해서 풀어야지, 강경대치만 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시민사회의 입장 사이의 간극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공세'만 펴는 정부·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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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사장 조계사 방문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과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박물관 앞에서 철도노조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한 면담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무엇보다 새누리당은 이날 18일째 파업을 이어가는 철도노조에 대해 '부도덕자'·'위선자'라는 딱지까지 붙였다. 철도노조 파업을 해결할 사회적 논의를 주도하거나 동참하기 앞서 감정의 골부터 깊게 파버린 셈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철도노조 지도부가 어제 조계사로 숨어들어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이니 종교계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했다니 이들의 인식이 놀랍다"며 "국민의 혈세로 직장을 만든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 행세를 하며 경제적 손실을 끼치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비난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철도노조 위선 쩌네요, 수서법인(자회사) 철회 외에는 어떤 협상과 대화도 없다고 철도공사 측에는 주장하면서 대화를 거부하는 측이 철도공사라고 매도하네요. 실상 협상을 거부하는 측은 노조인데 말이죠"라고 밝혔다. 또 하 의원은 "영원한 진보는 없습니다, 한때 진보도 세월이 흘러 사회 전진을 가로막는 수구꼴통이 되기도 합니다, 현 철도노조 지도부가 그렇습니다, 좌우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공룡이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전날(25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파업 불참자의 경조사는 일체 참여하지 말라'는 한 철도노동자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불법 파업 미가담자에 대해 모 노조 간부는 소속 조합원에게 '각 지부는 파업불참자에 대한 경조사를 일체 거부하라' 내용의 핸드폰 문자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중략) 이게 노동자인지 조폭인지"라고 말했다.

여당 뿐만이 아니다. 정부도 이날 재개된 코레일 노사 실무교섭에 찬물을 끼얹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이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배석한 가운데 "투쟁에 밀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조계사를 찾아가 박태만 철도수석부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를 만난 지 30분 만의 일이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나섰다. 그는 이날 낮 12시께 동대문구 이문동의 코레일 철도차량기지를 방문해 "파업 참가자 몫까지 일을 하니 얼마나 고생 많고 힘드시느냐"면서 파업 미참가 노동자들을 격려했다. 파업중인 철도노조를 향한 '여론전'인 셈이다. 특히, 그는 "명분 없는 파업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고 많은 노조원들이 (정부의 방침을) 이해하고 돌아오리라 생각한다"며 파업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준석 "박 대통령, 철도노조 파업 해결 직접 나서야"

이처럼 정부·여당이 사실상 '타협 불가'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오전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 "박 대통령 당선 시 가장 큰 구호 중 하나가 대통합의 지도자였다"면서 "철도노조와 박근혜 정부 간 갈등은 둘째치고 둘 간에 소통이 없었다는 사실은 우선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박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말하는 틀에서 보면 공기업, 그 중에서도 KTX나 코레일 개혁은 큰 아젠더(주제)"라며 "정권의 성공과 실패와도 결부될 수 있는 사안인데 직접 나서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오후 철도노조 파업 해결을 위한 '노사정 대화'를 마련하기로 했다. 환노위는 이날 당초 예정돼 있던 현대제철 현장 방문 계획을 연기하고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코레일, 철도노조 측이 참석하는 전체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철도노조 측은 수배중이 아닌 노조 간부가 노조 대표권을 위임받아 참석할 예정이다.

환노위원장인 신계륜 위원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야를 설득해서 이뤄진 자리"라며 "노사정 간의 새로운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철도노조 파업 #철도민영화 #도법스님 #새누리당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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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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