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아의 공원평화와 안식의 대명사 같이 유럽의 공원은 넉넉하다. 그 공간이 던지는 메시지는 여유와 관용이다.
김진환
누군가 스페인은 돈키호테와 플라멩코 그리고 투우의 나라라 했다. 도심의 레스토랑이지만 플라멩코의 무대는 마치 동굴을 연상케 한다. 스페인의 많은 건축물들이 동굴의 종유석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것을 보듯 그들 집시의 거처가 동굴이었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
불이 꺼지고 마치 한국의 창을 대하듯 일반 관중은 무대와 바로 접해서 앉는다. 두 명의 키타리스트의 반주가 시작된다. 모두들 생김새는 인도와 중동 계열이다. 주위의 남자들의 박수와 노래로 플라멩코의 춤은 시작과 끝을 이룬다. 그리고 어두침침한 불빛이 일어나고 주위는 마치 쥐죽은 듯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플라멩코, 그것은 절규였다. 소름이 끼치도록 슬픈 그들 내면의 통곡이었다. 어떠한 해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들의 춤과 언어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일종의 진한 울림을 내던졌다. 아프도록 그리하여 상처 같은 흔적이 되어버린 그들의 쓰라린 자기고백의 현장이었다. 때로 박수가 터지고 관객 또한 스스로에 함몰되어져 갔다.
흰옷을, 그리고 빨강의 그리고 회색의 그리고 검정의 옷들을 걸쳤다. 3명의 여자와 2명의 무용수가 교대로 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리고 뒤로 둘러앉은 키타반주와 손뼉과 애를 끊는 목소리의 남자가수들의 열창이 실내를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발로 리듬을 맞추는 그리고 손으로는 마치 승무의 곱고 연한 선이 때로는 숨가쁜 플라멩코의 급박한 질주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율동이 하나의 육체와 영혼의 언어로 압축되어져 그 자체로 의미가 되었다. 그 언어의 이면에 숨은 집시의 노래는 정말 신비하게 들려도 그것은 그들의 생활의 애환이 담긴 일상어였다. 그러기에 그것은 억압과 발산, 그리고 절제와 폭발의 미학이다. 집시족의 언어를 춤으로 승화한 예술적 자기표현의 극치이다. 항상 극적인 반전의 있을 듯 하나 실상은 한을 풀어내는 집시적 표현을 춤과 노래로 풀어내고 있다. 그것이 플라멩코 감상법인지도 모른다.
플라멩코의 순간에 동원된 모든 수단은 일체감의 귀결이었다. 그것들은 하나의 역할과 의미를 갖추면서 시종일관 관객을 사로잡는 마법의 순간을 주도했다. 때로는 사자같이 포효하고 때로는 사슴같이 순수한 자태로 무용수는 스스로를 불살라가고 있었다. 비록 한사람씩 교대로 무대를 장식하고 있어도 그 감당할 수 없는 폭발력은 앞의 관객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남자무용수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혼신의 몰입으로 마치 신들린 사람 같았다. 자기를 인식하지 않는듯한 마치 무한한 우주공간에 내던져져서 유영하는 무국적자같이 한없는 연민을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그의 춤사위는 모든 집시적 감정의 총집결같이 완벽했다. 한과 슬픔, 사랑, 기쁨, 애환 등을 춤꾼의 쟁이 의식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뒷줄의 반주꾼들이다. 기술적으로 손과 발 그리고 입은 항상 시를 쓰고 있는 뒷좌석의 시인들이다.
여인들은 희고 붉은 옷을 입고 있다. 다리의 가늘고 유연한 모습과는 달리 유방은 관능적이고 터질 듯이 풍만하다. 부드럽고 절제된 모습이지만 때로는 터지는 그 순간폭발력은 남자 무용수의 격정 못지 않게 힘이 있고 강하다. 때로는 유혹적이고 때로는 숨막히는 성적호기심이 분비될 정도로 요염하다.
플라멩코는 생활의 애환을 춤과 노래를 통해 승화하는 놀이판이다. 여러 세월이 깃든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관습의 현재진형형이다. 노래와 손뼉 그리고 기타반주를 통해 처절할 만큼 극단적 자기표출을 이루어내고 있다. 마치 한국의 민요와 창을 보는 듯하다. 소리꾼의 소리에 맞추어 춤추며 창을 읊는 우리의 소리같다. 단지 동양적 여린 순수로 정적인 표출방법이 서양의 동적 표현으로 대치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율동은 움직임이 크고 애를 끊는 순간폭발력의 실체같이 힘이 있을 뿐이다.
검은 옷의 빨강 숄을 걸친 여인이 등장한다. 관객을 홀리는 듯한 동작이 연속과 단절을 반복한다. 선이 곱다. 유연하고 빠르다가도 일순간 클라이막스에서는 폭발한다. 우아하고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모습에 얼굴에서 눈을 땔 수 없게 만든다. 관객은 환호하고 열광하고 박수한다. 남자 둘이 절도있고 규율적이다. 박력이 넘친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모두들 나와 피나레를 장식하고 있다.
상상 속의 플레멩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