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할스만 I '달리_수염사진(Philippe Halsman Looks at Salvador Dali)' 젤라틴 실버 프린트(Gelatin silver print) 1954.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달리와 뒤에서 사진을 찍는 필립 할스만
Philippe Halsman/Magnum
우리에게 덜 알려진 할스만은 어떤 작가인지 그의 연대기를 통해 먼저 알아보자.
필립 할스만(Philippe Halsman, 1906-1979)은 1906년 북구(北歐)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Riga)에서 당대 유명한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유태계가정에서 자랐다. 고교 땐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어, 러시아어 등을 배워 국제적 감각을 익혔고, 졸업 후에는 독일로 가 드레스덴기술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22살 때 부친과 함께 오스트리아 티롤(Tyrol)로 가족휴가를 갔다 부친이 급사하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엉뚱하게도 아들인 할스만이 그곳 반유대주의 분위기에 휩싸여 부친을 살인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중형을 언도 받는다. 1931년 복역 중, 그를 위해 사발팔방으로 뛰어다닌 여동생 리우바(Liouba) 공로로 풀려난다.
그녀는 당시 유럽의 유태계 지식인인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토마스 만 등을 설득해 탄원서를 내게 했고 이게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 이후 그는 고향을 다시 찾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그의 사진에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게 한 것 같다.
할스만은 1931년 파리로 이주해 소르본대에서 수학했고 다음해 몽파르나스에 개인 스튜디오도 냈다. 14살부터 사진을 시작해 25살에 독립사진가가 된다. 그가 이렇게 전공을 바꾼 건 사진을 전공한 애인 이본 모제(Y. Moser)의 영향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