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외대 총장선거 후보 2013년에 진행된 한국외대 총장 선거에 나온 두 후보의 공약에서 볼 수 있듯, 학생을 위한 총장이라기보다는 교수를 위한 공약이 중심인 즉, 교수를 위한 총장에 가깝다.
이영호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인가?모든 사회현상은 원인이 발생하면 적당한 과정을 거쳐서 숙성, 발효되고 그것이 결과로 표출된다. 현 대학생들의 사회에 대한 무관심 및 보수화의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정치적 이유 김영삼 정권 당시 수구세력들의 교육정책방침문민정부는 최초의 민주화세력이 주도한 정권이었다는 동시에 친일파 및 군부와 같은 수구와 보수세력을 껴안은 정권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6월 항쟁이후 조금씩 사회가 민주화가 되어가는 것을 목도한 보수세력은 미래의 유권자이자 정치적 자산이 될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등을 돌릴 것을 두려워하였다. 따라서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학문인 철학과 역사교육을 교육과정에서 축소하는 방침을 내부에서 정하고 우민화 정책을 장기적으로 펴나가기로 결정한다. 한국은 철학이란 과목은 없고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이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대입수능에서 전 과목보다는 점점 국어, 수학, 영어 계열의 비중이 증가하고 사회탐구는 선택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철학이나 역사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 어렵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관심은 자리 잡기 어렵다. 지금의 20, 30대들은 이러한 교육정책의 결과물인 셈이다. 장기적으로 역사나 철학교육을 축소 약화시키는 것으로 전략을 세웠던 것이고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2. 경제적 이유 IMF 외환위기이후의 취업문제와 생존문제경제적 이유는 다른 이유들에 비하여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제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처럼 물질이 정신을 규정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과거의 대학생은 매우 적었다. 학생수도 지금보다 많았다. 100만 명이 졸업을 하면 30만 명만 대학에 진학하던 시대가 산업화 독재정권 시절이었다. 대학생들은 당시에는 고급인력이었기 때문에 졸업즉시 취업이 보장되었고 공부문제 보다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시절부터 대학숫자를 의도적으로 늘렸고 대졸자는 양산됐다. 때문에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라는 상징보다 다른 대학교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대학교는 취업인 양성소의 이미지로 전락했다.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적 문제도 영향이 컸다. 외환위기 이후 고급 인력들의 취업이 힘들어 졌다. 지구화라는 구호 아래 필요 이상의 스펙과 검증받은 어학능력 없이 취업은 어려워졌다. 김영춘 민주당 전 의원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3년 5월호>에 기고한 '보수정치 시대와 386세대의 시대정신'에서 386세대 국회의원들마저 보수의 경제 이데올로기를 답습했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무항산 무항심이라는 말이 있다. 먹고사니즘에 빠진 학생들은 학점을 챙기고 홀로 살기에 바빠졌고 자연스레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은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사회적 이유 6월 항쟁이후 우리 사회는 표면적으로 민주화가 되었다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어진 것은 과거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사회의 부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6 공화국이다. 우리는 선거의 5대 원칙을 지킬 수 있었고 휴지 쪼가리인줄 알던 헌법이 지켜진다고 생각했고, 시민사회의 성장과 노동자의 권익 향상 및 독재세력들이 조금씩 그 권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그 이전의 비이성의 광기의 시대로부터 탈피했다. 이에 비해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북한은 경제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고 그 잔악성 또한 과거보다 심해졌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이제 살만해 졌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정도의 민주주의와 자유이면 괜찮다는 안도감과 나태함이 자랐다. 6 공화국을 개선하고 끝나지 않은 부조리들을 개선하는데 무심해진 자리에 다시 이전 세대의 부조리들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를 억압하는 구조는 단기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건설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철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생도 사람이다. 더 나은 혹은 옳은 뜻에 헌신하기 이전에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모두 함께 시위하고 함께 목표를 향해 헌신하자고 하기에는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대신 일상 속에서 알고는 있어야 한다. 무엇이 정의인지 알아야한다. 일베가 왜 잘못된 것이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한다. 현 사회의 사건들에 눈을 감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한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목표를 위해 헌신하면서 무엇이 불의인지를 잊었다. 심지어 IMF이후 일부 운동권들도 2009년 성공회대 한국대학생연합 가입투표 부정과 같은, 목표를 위해 불의를 행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우선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극복하고자 했던 불의가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