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근혜 신임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고 있다.
남소연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독선과 불통으로 치달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도 더 강도 높은 권위적 통치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원인을 사람들은 독재자를 부친으로 둔 박근혜 정부의 역사성이나 그를 둘러싼 인적 네트워크의 속성에서 구하곤 한다. 하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힘 관계의 산물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지금 이 순간까지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는 기본적으로 여-야 혹은 보수-진보간의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 진보의 주력인 참여정부 및 열린우리당은 잦은 실책과 내부 불협화음으로 정치기반이 총체적으로 괴멸되는 사태를 맞이해야 했다. 그 속에서 치러진 17대 대선 결과는 500만 표차가 넘는 진보진영 최악의 참패로 끝났으며, 18대 총선 결과도 한나라당 153석 대 민주당 81석이라는 엄청난 격차의 패배로 나타났다. 그 후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빈번한 국회 날치기와 노골적인 불법감시 및 사찰, 반대세력 괴롭히기는 이 같은 힘의 격차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18대 대선 이후 와해된 야권 핵심 지지층, 왜?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현상은 이 같은 통상적 기준만으로는 잘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난 대선은 거의 일대일 구도로 치러졌으며, 그 직전 4월에 있었던 총선거에서도 국회의석 차이는 한나라당 152석 대 민주당 127석(야권 연대 140석)으로 크게 좁혀졌다. 이는 역대 정당관계에 비춰보더라도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충분한 토대였다. 그런데 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일방적 태도를 지속하고 있고, 야당은 이를 견제하는 데서 철저히 무기력할까?
여기에는 대선 직후 야권의 핵심지지층이 급격히 흩어진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예를 들어 대선 전만 하더라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당지지율 격차는 평균적으로 6~7%P정도였지만 대선 직후에는 두 배 가량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R&R 2013.1.22조사). 그 같은 현상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인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기류에서 더욱 두드러져 나타났다.
대선 직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1월 30일 '주관적 정치이념성향' 조사를 보면 보수:중도:진보의 유권자 비중은 301:367:271이었다. 그런데 대선 후 2013년 3월 1일 조사에서는 306:247:204로, 6월 22일 조사에서는 271:281:137로 나타나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나마 남아 있는 진보 성향 유권자들도 이제는 민주당 지지가 아니라 무당파, 안철수, 새누리당 지지로 더욱 파편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추세는 총선에 이은 대선에서의 잇단 패배에 따른 상실감, 열린우리당에 이어 민주당에 두 번 속았다는 배신감 등이 복합되어 어느 정도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그 추세가 너무 급격하고 속수무책의 양상으로 가게 된 데는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먼저, 대선 직후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 진보지식인들은 패배감과 허무감에 빠져 핵심지지층이 이탈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고, 당연히 이를 저지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대선 후 남양유업 사태 등 경제민주화 열기가 지속적으로 분출하고 있었고 재벌의 경제민주화 반대에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에 대해 야권은 제대로 된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진보적 지식인들도 패배감과 자조에 빠져 지낸 면이 많았다.
대선 후 민주당 등 야권과 지식인들은 자기혁신과 변화에서도 목소리만 높았지 제대로 된 성과물을 하나도 내지 못하고 공론만 일삼으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민주주의 이슈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여권의 물타기 전략과 종북몰이에 제대로 된 대응전략도 없이 상황이 좋아지면 강하게 나가고, 상황이 안 좋으면 물러서는 모습을 반복했다.
문재인-안철수 구도의 부활이 패착인 이유다음으로 야권의 주요 리더들이 취하고 있는 지리멸렬하고 혼란스런 행보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 먼저 문재인 의원은 지난 대선의 야권후보로서 부정선거의 피해자지만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기도 하다. 당시 이 사건에 안이하게 대처하여 여권의 역공을 자초했고, 대선승리의 화룡정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매몰되어 자기쇄신과 변화 경쟁에 안일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후 문 의원은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것 못지않게 이를 막지 못한 데 대해 책임지는 행동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그간 문 의원은 NLL 대화록 논란에서 나타난 것처럼 정치 현안에 대한 한풀이식의 편협한 태도로 야권 전략에 혼선을 가중시켰다. 또,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의 부정선거 은폐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선점하고 주도권을 쥐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안철수 의원 또한 국가기관 선거개입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모으기보다는 기성 야당들과의 적당한 거리두기와 틈새를 이용한 세 불리기에 주력해 왔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도입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이를 관철하기 위한 후속행동이 전무한 것을 보면 다분히 면피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까지 했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이전에 그가 말하는 상식 대 몰상식의 문제이며 국가정체성의 근간을 흔드는 헌정유린에 해당하는 문제이기에 그에게도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대응해 왔다. 민주주의는 그렇다 치고 그의 말대로 민생이 중요하다면 민생이라도 확실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안 의원이 기초연금, 세제개편, 철도파업 등에서 제대로 대응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