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카르멘>
박민희
지금까지의 카르멘은 호세의 이야기였다. 원작은 치명적 매력의 카르멘에 의해 파멸하는 한 남자를 통해 복잡한 인간 내면을 빼어나게 그려냈다. 당연히 모든 이야기의 초점도 호세다. 반추해 보면, 우리는 이제껏 호세의 눈에 비친 카르멘을 보아온 셈이다.
뮤지컬 <카르멘>은 다르다. 이번엔 카르멘이 진짜 카르멘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이다. 이번 공연은 전형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카르멘의 탄생으로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대중적 멜로디를 뽑아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 화려한 출연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 줄로 표현하자면, 뮤지컬 <카르멘>은 화려한 캐스팅과 익숙한 이야기 구조가 만들어낸 한 편의 즐거운 대중작이다.
진짜 '카르멘' 이야기호세는 순결한 여인 카타리나와 약혼한 사이다. 그는 서커스단과 함께 건너와 마을에 소란을 일으킨 집시 여인 카르멘을 이송하던 중 그녀의 유혹에 동요한다. 카르멘 역시 처음으로 자신을 강경하게 대한 이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끊임없이 흔들리던 호세는 그녀를 보호하려다 살인 누명을 쓴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점점 위험이 도사리는 열정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뮤지컬 <카르멘>은 신파다. 기존작에서 자유를 울부짖었던 집시여인 카르멘의 모습은 없다. 뮤지컬 속의 카르멘은 사랑에 울고, 사랑에 다치며, 사랑에 구원받는 여인이다. 원작 속 자신을 죽이려는 연인 앞에서도 고개를 치켜들던 카르멘의 오만한 매력은 함몰된 대신 사랑에 빠진 애틋한 여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새롭게 설정된 다른 캐릭터의 성격도 신파에 힘을 더한다. 카르멘에 의해 파멸하는 남자 호세는 주체 의지를 가진 강인한 남성이 됐다. 호세는 순결한 사랑을 버리고, 불타는 사랑의 정열에 몸을 던진다. "사랑 앞에서 후회하지 않겠다"는 호세의 절절한 고백에 "이번만은 사랑을 하고 싶다"고 울부짖는 카르멘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신파는 중독성이 강하다. 스토리만 보자면 최루성 멜로라 해도 무방하다. 이 익숙한 멜로물에 힘을 싣는 것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이다. 플라멩코의 리드미컬한 리듬을 담은 비바는 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카르멘의 절절한 솔로 <그럴 수만 있다면>은 대중을 공략하는 프랭크 와일드혼의 진가를 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