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운우도첩 중), 전 김홍도, 18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28.0x38.5cm, 개인소장 -<명작순례> 114쪽-
(주)눌와
몇년 전, 동해안 일출을 찍겠다고 강원도 양양 앞바다로 몇 차례 출사를 다녔습니다. 그때 속초에서 활동하시는 김욱이라는 사진작가 분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연세 일흔이 넘은 어르신으로 설악산과 동해안 풍광만을 찍는 전문 사진작가셨습니다.
몇 번째 뵙던 어느 날, 그분께서는 일출을 찍을 거면 다음날 새벽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새벽, 바다서 떠오르는 태양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품은 채 그분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분께서 안내한 곳은 평소 일출사진을 찍던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움직여 소위 포인트라는 곳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니 캄캄하기만 했던 동녘하늘이 열리고, 검푸른 빛을 띠던 바다가 붉게 물들며 아침 태양이 솟았습니다.
같은 태양이지만 달랐습니다. 일출을 보는 안목이 달랐습니다. 지금껏 보아왔던 일출과 김욱 작가께서 안내해 준 곳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느낌도, 장관도, 감탄도, 배경도 달랐습니다. 몇 차례 보아왔던 일출이 침묵 속의 일출, 어둡기만 했던 바다에서 붉은 태양 하나가 아무런 꾸밈없이 불쑥 솟아오르는 장관이 자아내던 단조로운 감탄이었다면 김욱 작가가 안내해 준 곳에서 맞이한 일출에는 배경을 품고 있는 조화로움, 풍광과 어울리며 뭔가를 끊임없이 연출해내는 스토리텔링이 뜨거운 아름다움과 감동으로 담겨있었습니다.
어등을 밝힌 채 조업중인 배, 기암절벽의 낙락장송, 천 년의 역사를 안고 있는 의상대... 동해의 아침을 조명하는 일출은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풍광들을 조화롭게 품어내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이 연중 지속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런 일출을 찍을 수 있는 건 일 년에 고작 사나흘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언제쯤엔 어느 쪽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어떤 풍광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걸작을 연출하는지 훤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맘때의 일출은 어디서 봐야 가장 아름답고, 저맘때의 일출은 언제 어디서 봐야 가장 장관이라는 걸 두루 섭렵하고 계셨습니다.
그 분이 보여준 건 단지 동해안 풍광만이 아니었고,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만도 아니었습니다. 일출을 보는 안목이었습니다. 같은 일출을 보더라도 어떤 안목을 가지느냐에 따라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아름다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환희가 천양지차라는 걸 실감한 경험이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틔워주는 안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