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담기 시범을 보이는 두 박사님들
김영희
김장도 했겠다, 메주도 쑤었겠다…. 할 일 다한 줄 알았는데 넘을 산이 또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고추장 담기.
연심이네 가보니 거실에 있는 대야에 새로 담은 고추장이 가득했다. 병에 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지금이 고추장 담는 철이란다. 나는 고추장이 아쉬운 터라 따라해보고 싶었다.
"나도 담글까?""그리여. 고추장은 쉬운께 담가봐. 장에 가서 메주가루하고 물엿을 사와. 엿기름가루는 나한테 있는 것 조금 줄 텡게. 고춧가루는 더 곱게 빻야할 것인디 어쩌까…. 그냥해보든지. 찹쌀은 있겄제? 찹쌀 한되만 해." 찹쌀은 이장네서 사기로 가을에 맞춰놨었다.
"저 인자 참쌀 좀 팔아주셔요. 고추장 담글라고요.""글안해도 내가 그집 찹쌀을 좀 줄라고 했어. 아무말도 하지 말고 이것 그냥 가꼬가." 이장댁은 몇 되나 될지 모르는 찹쌀을 값을 치지 않고 굳이굳이 그냥 안겼다.
"메주가루는 되얐어. 계산댁이 사논 것이 있다네." 마을회관에 간 연심이네가 계산댁 메주가루를 가져다줬다.
"나 모레는 손님이 온께 낼 아침에 고추장 담을라요. 좀 봐주셔요 잉." 고추장밥에 전전긍긍한 나... 마을사람들은 폭소나는 친척이라도 되는양 연심이네에게 다짐다짐을 하고는 오후에는 물엿대신 쓸 조청을 남원까지 가서 사왔는데 오는 길에 돼지고기도 좀 샀다. 날이 추워지면서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해먹는 점심에 반찬 한 가지 보탤 요량이었다.
"밥은 다 했어?" "아직 안했는디." "엥? 밥을 해야 메주가루를 섞제. 나는 또 진즉 해놓은 줄 알았네. 이러다 점심 때 되불 것구만. 얼른 밥 안치고 다 되면 나 불러이." "그러께요."이튿날 오전, 고추장을 봐주러 온 연심이네가 도로 내려갔다. 일 순서를 모르니 밥을 미리 해놔야 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제 산 돼지고기부터 얼른 디밀고 와서 밥을 하려고 마을회관에 뛰어갔다.
"이것 그냥 놓고만 가께요. 점심에 드셔요. 나는 가서 고추장밥해야 해요."마침 마주친 부녀회장에게 말했다.
"가불면 어쩌라고. 고추장은 점심 먹고 해도 된께 같이 점심 채려서 먹고 가야제." "연심이네가 지금 고추장밥 해놓라고 했는디요." "고추장은 오전에 담으면 곰팽이 나는 법이여. 오후에 담아야제." 부녀회장이 실실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하먼. 고추장 밥도 오후에 해야 곰팽이가 안나." 옆에 있던 할머니들도 맞장구를 치며 실실 웃었다.
"아, 연심이네가 지금 밥하라고…."이장댁까지 덩달아 웃었다.
"연심이네한테 지금 이리 오라고 전화했응게 고추장은 점심먹고 나서 담가."아닌게 아니라 연심이네가 회관으로 들어섰다.
웃음소리와 함께 익어갈 고추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