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시위대이른바 고려대 대자보를 계기로 모인 이날 시위대는 기존 운동권 단체의 집방식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자신이 준비해온 종이에 자신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적는 것은 이번 집회가 집단이 아닌 개개인이 주체임을 드러낸다.
금준경
가장 큰 문제는 청년을 이야기하지만 청년과는 이야기하지 않는 운동권식 소통의 한계에 있다. 운동권 대자보는 이미 답이 정해진 일을 당사자들에게 통보할 뿐이다. 이는 대자보를 읽는 당사자로 하여금 대학생들의 사회참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게 한다는 불만과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반면 고려대 대자보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글이다. 이는 청년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소통이다.
정파성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동시에 피드백이 가능한 꽉 막히지 않은 소통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폭발적인 반향을 이끈 원동력이 있다. 이는 대자보를 쓴 당사자가 청년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으며 특정 정파나 단체에 무조건적인 동조를 하지 않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달리말해, 고려대 대자보가 운동권에 국한되지 않고 큰 반향을 만들어낸 비결은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용자 중심'의 사고로 글을 담은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실제 대자보를 쓴 주현우씨는 인터넷 언론 <ㅍㅍㅅㅅ>와 했던 인터뷰에서 "요즘 청년들이 패기 없고 실천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놀기 바쁘고 고생 안 하려 한단다. 이건 좌도, 우도 없다. 어느 쪽에서든 청년이 쓸모없고 무능력하고 방탕하다고 본다"며 청년과 진보를 동일시하는 운동권식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년진보 혁신의 계기로 삼길이석기 사태 후 진보정당 재구성 논의가 쟁점화된 적 있다. 낡은 진보를 혁파하고 보다 대중적인 진보로 혁신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대학생 운동권 단체인 <한대련>은 통합진보당 당원들로 구성됐고 당과 운명을 같이 해왔다. 기성 진보의 시각을 청년으로 옮기면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 진보 역시 재구성해야 할 대상이다. 그 재구성의 중심에 고대 대자보와 같은 대중적 사고가 필요하다.
물론, 운동권의 공을 폄하하거나 반운동권 정서에 기대려는 취지가 아니다. <조선일보>처럼 정당이나 단체에 소속된 학생들이 순수하지 않다는 논리를 펴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NL이라는 단일정파로 구성된 <한대련>의 한계가 분명하다. 특정 PD세력 역시 무장혁명론이나 지나친 계급투쟁에 매몰되기도 했다. 실제 이번 대자보가 게시되고 SNS를 비롯한 뉴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운동권 단체들은 아무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운동권의 중추를 자임하는 <한대련> 또한 다르지 않았다. 대자보를 퍼 나르고, 자신만의 대자보를 써서 고대 대자보에 응답하고, 서울시청과 서울역에서 뭉쳐 행동한 이들은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다. 이는 운동권 단체가 대표성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드러내는 반증이다.
사실 오늘날 고려대 대자보가 일으킨 반향처럼 운동권 단체와 평범한 대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행동한 적이 있었다. <한대련>이 지금과 달리 비운동권 학생회와의 가입과 연대가 이뤄졌던 2008년 촛불집회 직후다. 당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필자는 단과대 학생회 일을 했는데, 이때 <한대련>과 연대한 적 있다.
그러나 그 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학생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 보다는 집회에 '동원'하는 수단이자 숫자로 여긴다는 생각이 든 이유에서다.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며 다양성을 보장하기 보다는 일방적 집단주의가 지나쳤다. 특정 정당에 종속된 사고의 한계 또한 분명했다. 21세기 대학생연합이 아닌 20세기 자주파연합이었다.
지금, 운동권이 아닌 청년들이 고려대 대자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이 힘과 함께하고 싶은 운동권 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특정 정파에 함몰된 단체가 '안녕들 하십니까' 대학생들을 함부로 이끌려했다간 과거처럼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운동권 단체들이 대중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다시금 고민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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