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왕궁무너지내린 제국의 휴유증처럼 상처뿐인 영광의 현장..
김진환
유럽은 기후만으로도 그 나라의 국민성을 파악하는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북구라든지 영국의 경우, 춥고 우중충하고 비오는 날씨로 인해 전형적인 실내문화 (indoor culture)의 대명사처럼 얘기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실내문화가 비교적 잘 정착되어 왔다. 그리고 독서를 통한 지적 충만을 생활의 여가(entertainment)로 여기기 까지 한다. 책읽는 문화, 토론하는 문화 그리고 사색하는 문화....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지적 충동이며 항상 우리들을 유인케 한다. 나는 그들 문화의 이러한 면이 좋다.
하지만 남부유럽은 아웃도어 컬쳐(outdoor culture)가 대중을 이룬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는 낙천적인 그들의 인생관은 항상 햇살아래서, 여유롭고 걱정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괴테는 230 년전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그곳의 날씨에 매료되어 여행을 떠나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지중해의 건조한 햇살아래에 이들은 인생은 음울하고 걱정스런 삶의 여정이 아닌 향유해야 할 시간의 연속임을 이미 오래전에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둡다. 마드리드행 비행기의 의자는 마치 우리들의 사무실의자와 흡사하다. 실용적이라는 느낌에 일말의 편안함을 느낀다. 밖에는 빗방울이 날리는 것 같다. 그리고 비행기의 날개에 규칙적으로 빛나는 방향등이 그 야간비행의 외로움을 밝히고 있다. 어딘지 여행답지 않는 여행 같다. 인천에서 독일로 그리고 마드리드로 향하는 지금은 약간의 피곤함이 엄습할 만 하였으나, 하지만 크게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여행이 던지는 설레임이 깃든 긴장감에 연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녁식사가 나온다. 별로 입맛은 없었지만 일단 먹어둔다는 느낌으로 뚜껑을 열어본다. 정확하게 말해 우리의 보리밥이다. 뜨겁기조차 하다. 이베리아 반도의 졸음이 오는 밤 비행에서 웬 시골 보리밥상을 대하게 되다니...
마치 막장처럼 마드리드 공항은 마감하는 시간이었다. 유럽은 이제 하나의 국가라는 느낌이 든다 독일에서 이미 수속을 한 처지여서 아무 입국절차도 하지 않았다. 쉥컨조약에 의한 비자면제가 이루어지는, 마치 내국적으로 EU가 움직이는 현장이다. 편하긴 했으나 그저 한 국가로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어두운 밤 호텔을 향한 교통수단은 택시이외에는 없었다. 마드리드의 비오고 안개낀 밤을 야간택시의 조명등이 뿌연 불빛을 날리며 질주하는 기분이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분위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