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제하
이제하
저간의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제하 작가는 내년 1월호부터 한국으로 귀화한 어느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일어나라, 삼손>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이 작가는 연재 1회분으로 원고지 100여 매를 써서 넘겼습니다. 그런데 지난 12월 2일, '연재 거부'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그 소식을 전하던 편집 담당자는 이 작가에게 위에서 현대소설을 바란다, 미래 지향적인 뭐라고 우물쭈물하면서 몹시 미안해했다고 합니다. 편집자의 '미래 지향적인' 운운의 말에 이 작가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거 진행형인 현대가 배경인데요. 안 읽어 보셨어요?"그렇게 몇 마디 하다가 얼떨떨해서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1회분 배경에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 항쟁'이라는 시대배경을 서술하는 단어 두 개가 들어간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로 작가의 심경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시는지요. 이제하 작가는 원래부터 이른바 '정치성' 짙은 소설을 쓰는 작가도 아니었습니다. <현대문학>은 이런 사실과 관련,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 건에 대해 해줄 말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현대문학>의 행보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12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현대문학>은 지난 9월호에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을 찬양한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바른 것이 지혜이다'를 게재해 논란을 불렀습니다. 그 '박비어천가' 비평문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평론가 양경언씨의 격월평문 '시의 정치성'은 <현대문학> 양숙진 주간의 의견에 막혀 문제의 부분이 빠진 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소설가 정찬씨는 지난해 12월 <현대문학>에서 장편 연재 요청을 받고 올 10월호부터 연재를 하기로 했는데 9월 초 1회분 원고를 보낸 지 10여 일 후 양 주간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대문학>은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잡지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가시화된 작품을 다루지 않았다. 다른 잡지에서는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현대문학> 연재물로서는 문제가 된다."정 작가가 실으려고 하는 소설은 1970~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인물들의 회고담으로, 이들의 눈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빛난 문학적 유산이라 할지라도 본지는 아무 반성 없이 이에 복종함을 조심할 것이며, 아무리 눈부신 새로운 문학적 경향이라 할지라도 아무 비판없이 이에 맹종함을 경계할 것"<현대문학> '창간사'의 일부입니다. 기존 문학의 권위나 시류에 대한 맹종을 경계하는 멋진 문구입니다. '우파' 문인 조연현이 권위를 혐오하던 '좌파' 시인 김수영의 작품을 기꺼이 받아들인 저간의 진실을 이 창간사에서 엿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요.
'죽음의 문학'이 결코 끝나지 않는 이유여전히 '순수문학'을 들먹이며 이른바 정치적 편향성을 경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조지 오웰(1903~1950)은 1946년에 발표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에서 '글을 쓰는 네 가지 가장 중요한 동기'를 밝혀 놓았습니다. 그 네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4. 정치적 의도 :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가 정치성을 띤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