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불복이 금기어? 언어도단이다

[주장] 대통령 비판에 재갈을 물려서는 안 된다

등록 2013.12.10 11:00수정 2013.12.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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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하나 민주당 의원의 '대선불복' 발언이 결코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사퇴 촉구 발언은 더욱 그렇다. 법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장 의원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자유다. 장 의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대통령 '사퇴'나 '대선불복'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의 국가의 모습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샌가 '대선불복'은 박근혜 정권에서 금기어가 돼버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인지역 언론사와 한 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했다. 곧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특정 정당 지지를 유도하여 선거에 개입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논란이 한창인 2004 2월 27일, 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본관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을 규탄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들이 내건 펼침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불법선거의 제왕 盧 대통령 심판하자

결국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그뒤의 모든 사정은 '탄핵 후폭풍'이라는 말이 설명해 준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오늘(9일) 자신의 트위터에 "장하나 의원 제명 추진? 새누리당 의원들이 과거 대선에 불복하고 노통에 대해 퍼부은 말을 다시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글을 올리면서 흥미로운 발언 몇 가지를 발굴(?)해 소개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발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첫 번째는 2003년 9월 3일에 현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한 발언이었다.

"내 가슴 속에는 노무현을 이 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이 지조를 바꾸지 않고 나간다면 우리 당은 노무현의 퇴임 운동을 벌여야 한다."

뼛속까지 새겨진 반 노무현 정서를 이처럼 '뜨겁게'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다른 하나는 2003년 10월 23일, 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한 말이었다.


"지난 대선은 노무현이 조직 폭력배 호텔업자 등의 불법적인 돈을 끌어다 치른 추악한 사기극이었다."

불법 선거 자금의 출처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으니 '모래시계 검사'다운 발언이었다.


새삼 새누리당의 '과거'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유전자에 아직 강하게 기억되어 있을 그 '대선불복'이 결코 금기어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에 대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식으로 회피하는 대통령이 과연 온당한가. '부정선거로 덕 본 것 없다'는 식으로 모르쇠하는 것이 국정 최고책임자다운 대통령의 모습인가.

그런 대통령을 향한 '사퇴'와 '대선불복'이 어찌 금기어인가. '금기어'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습 등에 의하여 신성시되거나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대상을 포함하는 단어를 이르는 말'을 가리킨다. '사퇴'와 '대선불복'에 얽힌 당사자가 봉건 시대의 왕처럼 '신성한' 최고 통치자여서 그러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대선불복'을 '금기어'로 규정하는 프레임은 심각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 사퇴'를 입버릇처럼 외치고 다녔다. 그들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한 것은 예의 '입버릇'이 결코 말만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행동으로 '대선불복'을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박근혜 정부 아래서는 그 '대선불복'이 '금기어'가 돼버렸다. '망언', '망동' 신세로까지 떨어졌다. 그들은 문제의 '금기어' 발언을 최초로 한 장 의원을 출당시키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출당 조치가 없으면 별도의 조치를 마련하겠다고까지 '협박'한다. 아연할 노릇이다. 이러다 진짜 '대선불복'이라는 말이 진짜 금기어가 돼 버리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결코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대선의 효력을 다투는 일은 대선 후 1개월까지 허용하고 있는 우리 헌법 질서를 정면으로 문란하게 하는 끊임없는 대선불복 언동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한다. 장하나 의원의 망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언동'과 '망동'이라는 말들에서 최 원내대표가 느꼈을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데 정녕 '언동'이고 '망동'인가. 최 원내대표에게 묻고 싶다. 만약 '대선 후 1개월' 뒤에 명백한 부정선거 사실이 발견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부정선거 사실을 들며 '대선불복 언동'을 보이면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것이니 규탄 받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것이 과연 우리 헌법이 지켜야 하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참 모습인가.

"내 주장은 차분하고 상식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공안 정국이다 보니 상식적인 얘기들이 '북한의 지령' 이런 식으로 돼 버린 게 아니냐."

장 의원이 <오마이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한 말이다. '상식'이 사라진 대한민국이 씁쓸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대선불복 #장하나 의원 #금기어 #박근헤 대통령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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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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