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을 하기 위해 가게를 방문한 조합원들과 나.
알바노조
드디어 약속한 면담 날. 조합원들과 함께 알바노조 조끼를 맞춰 입고 가게로 가는 길에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분을 이겨내기 위해 애써 밝은 척하며 조합원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이렇게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었음에도 퇴사 후 처음으로 사장님과 마주하려니 발걸음이 무거웠고, 전신에 피가 빠르게 돌았다. 퇴사할 때 수화기 너머로 들은 고함소리가 공명하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가게에 도착한 우리들은 사장님이 올 때까지 테라스에서 대기했다. 사장님은 가게에 도착해 함께 온 알바노조 조합원들을 보자마자 "영업방해다", "제 3자는 빠져라"라고 하며 면담에 응하지 않으려 했다. 알바노조 자문위원과 부산지부 위원장이 면담을 거부하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사장님은 대답 대신 경찰에 우리를 신고했다. 우리는 잠시 후 가게에 도착한 경찰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최종적으로 사장님이 면담을 거부한다고 판단한 후 가게를 나왔다.
자문위원과 지부 위원장이 사장님과 대화를 하는 내내 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주위에 동료가 있었는데도 난 경직돼 있었고 사장님의 눈을 쉽게 쳐다볼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렇게 가게를 등지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방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로 내 이름을 다정히 불렀다. 그리고는 다음에 볼 때까지는 몸 건강히 지내라는 덕담을 했다. 난 사장님에게 당당히 "체불된 임금 주시면 걱정 안하셔도 건강히 살 겁니다"라고 응수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라 스스로도 놀랐다. 함께한 조합원들로부터 용기를 얻어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으리라. 그 일 이후 나는 긴장을 풀게 됐다. 또, 경직돼 있던 이전의 태도에서 변화해 적극적으로 나의 요구 사항에 대해 사장님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호스로 물을 맞아가면서도 계속된 면담 요청사장님이 면담을 거부한 후, 알바노조와 나는 노동부에 체불임금 진정을 접수했다. 그리고 사장님이 면담을 받아들일 때까지 가게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기로 했다. 피켓에는 면담 공문에 첨부했던 요구사항이 적혔다. 하지만 사장님의 반응은 여전했다. 심지어는 나를 피고인으로 해서 고소하겠다고 했다. 또 계속해서 영업방해를 한다며 우리를 경찰서에 신고했고, 1인 시위를 할 때마다 우리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사장님은 경찰에게 우리를 현행범으로 잡아가 달라고 요청했다. 어느 날인가, 사장님은 경찰도 대동하지 않고 피켓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우리에게 물줄기가 쏟아졌다. 사장님이 청소를 한다는 핑계로 우리를 향해 호스로 물을 뿌린 것이다. 물을 피해 보던 우리는 청소가 끝나면 다시 피켓을 들려고 가게에서 떨어져 서 있었다. 하지만 청소가 끝난 후 다시 피켓을 들고 가게 앞에 서자 사장님은 다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비록 물도 맞고 내 생애 가장 많은 경찰과 단기간에 마주했지만, 난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내가 든 피켓을 본 주민들의 반응을 통해 알바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적용되는 게 얼마나 생소한지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