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95세 일기로 타계했다. 사진은 넬슨 만델라의 95세 생일 당시 모습.
EPA/NIC BOTHMA
1963~1964년 리보니아 재판에서 만델라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라벤 섬에 수감된다. '466/64' 만델라의 죄수번호다. 그는 1982년 케이프타운 교외 폴스무어 교도소로 이감될 때까지 라벤 섬에서 20여 년을 보낸다.
수감 생활은 열악했다. 장기간의 수감생활과 강제노역으로 그는 폐결핵 등 각종 질환을 앓았다. 옥중의 만델라는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이 된다. 1979년 자와할랄 네루상, 1981년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1983년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 국제상을 받은 것도 이 시기다. 1990년 2월, 27년이 넘는 수감 생활 끝에 만델라는 출소한다. 1991년 ANC 의장에 선출된 그는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 백인정부와 협상해 350여 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클레르크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1994년 4월, 남아프리카 사상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실시되었다. 1인 1표의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이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ANC가 60%가 넘는 유효투표를 얻으면서 승리한다. 그 해 5월, 만델라는 민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 정치인이기도 하다. 1995년 만델라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남아공 성공회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를 설치했다. 위원회는 아파르트헤이트 기간에 자행된 인권침해실태를 조사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하는 청문회가 열렸고, 피해 보상과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졌다. 진상조사는 백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흑인 투쟁 조직의 테러도 공평하게 조사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진상'을 파헤치는 것과 동시에,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칠 경우 사면을 진행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2만 1000여 건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고, 5392명이 처벌, 849명이 사면을 받았다. 위원회는 1998년 350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 제출을 끝으로 활동을 마쳤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보복없는 과거청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99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2001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그는 2004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은퇴'를 선언한다. 2009년, UN은 만델라의 생일인 7월 18일을 '세계 넬슨 만델라의 날'로 정했다.
이처럼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그였으나 그 자신은 '성인'이라는 칭호를 부담스러워했다. 1994년 발간된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의 속편으로 쓴 미완성 원고에서 만델라는 이렇게 썼다.
"어렸을 때 나는… 시골소년에게 있을 수 있는 약점과 실수, 과오를 모두 가지고 있었고, 비전과 경험의 폭이 주로 내가 자란 지역과 내가 다닌 대학교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영향을 받았다. 나는 오만에 기대어 나의 약점을 감추려고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동지들 덕분에 나와 다른 동료 죄수들이 무명의 존재에서 까닭 없이 두려운 존재, 아니면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격상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복역한 죄수 가운데 하나라는 아우라도 완전히 걷힌 적이 없지만 말이다. 감옥에서 심히 걱정했던 것 하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바깥 세상에 투사한 허상, 내가 성인(聖人)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며 '성인은 계속 노력하는 죄인'이라는 세속의 정의를 따르더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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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의 정치인, 넬슨 만델라 영원히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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