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백여 명의 서울대 학생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다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앞세우고 학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태원
교육부는 심의위원 회의를 통해 지난달 29일 고교 한국사 교과서 7종에 대한 수정명령을 내렸다. 특히 미래엔출판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소 주제명 가운데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다니!'가 교과서 용어로 부적절하다며 다른 표현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심의위원을 밝히란 요청에 대해, 교육부는 이름 모를 '각계에서 추천받은 전문가'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경찰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이 왜 교과서 용어로 부적절한지는 알 길이 없다.
지금 곱씹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변명이다. 교과서에서 지운다고 역사가 바뀌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또 기록한다. 진실의 묵직한 울림을 얄팍한 간계로 막을 수는 없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그 사진당시에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단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었다. 말이 돼야 말이지.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축소와 은폐에만 급급한 정부에 분노했다. 그날도 연세대 학생들은 교내집회를 마치고 정문 밖을 막 나서던 참이었다. "독재 타도, 전두환 물러가라"란 구호를 몇 번 외치기도 전에 최루탄이 쏟아졌다.
후퇴하던 시위대에서 갑자기 한 학생이 맥없이 쓰러졌다. 뒷머리에서는 시뻘건 선혈이 쏟아졌고 몸은 심하게 떨렸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 하나가 다급히 그를 일으켜 세웠다. 곧이어 네다섯 명이 더 달려와 쓰러진 학생을 부축해 세브란스 병원 쪽으로 옮겼다. 응급실로 실려 가는 중, 쓰러진 학생은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아 고통에 신음하며 내뱉었다.
"내일 시청에 가야 하는데…."그날 기자들은 대부분 연세대 정문 맞은 편 철길 주변에 있었다. 다소 먼 거리지만 경찰과 연세대 정문, 그리고 학생들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몇 안 되는 외신기자가 다였다. 그러나 단 두 사람,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는 기자가 있었다. 로이터 통신의 정태원 기자와 임시사원으로 있던 그의 동생 정국원 기자였다. 덕분에 그 순간은 기록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