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우리동기들은 사이가 좋아서 MT를 자주 다녔다.
박정훈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나를 불러 송별회를 마련해주었다. 우리 과에서 이쁘다는 여자후배들은 다 불러놓고 송별회를 해주는 이유는 대체 몬지(물론 다들 친해서 자발적으로 온 것이었다). 물론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지만 우리과는 미인들이 많다고 타과에 소문이 자자 했었다. 그날따라 과 여자동기들도 이쁜 동기들이 왜 이렇게 많이 왔다가는지. 참 고맙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게다가 그날 아끼던 여자후배들에게 국화를 선물 받고서는 웃기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였다. 그래서 일까 술이 그날은 무지 땡기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동네 친구 중 듬직한 체대 친구와 같이 송별회에 참석하였다. 어려서부터 복싱을 해서 고교 짱출신에 외모며 성격이며 너무도 남자답고 신뢰감 있고 듬직한 친구라 같이 다니면 내가 든든할 정도인 친구였다. 그래서 이날은 신신당부를 하며 부탁을 했다. 내가 과음을 하거나 하면 좀 챙겨달라고. 그러고 나서 나는 내내 건배를 외쳤다."나의 청춘은 이제 끝이구나! 건배! 건배! 건배!, 군대 가는 건 슬프지 않은데 나의 청춘이 가는 게 슬프구나!"라며 유치한 말들로 친구들과 친한 후배들과 마셔대기 시작했다.
"많이 취한 거 같다. 친구로서 걱정되니까 자제해라! 긴장하고! 내가 보고 있으니까 힘들면 바로 신호줘."어느 순간 나의 듬직한 고향 친구는 술이 얼큰하게 취한 내게 와서 조용히 말했다. 어찌나 신뢰감 있고 듬직하게 말해주는지 한순간에 맘이 탁 놓일 정도였다. 그래서 천천히 자제하며 술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술이 확 올라와서 잠시 바람이나 쐴 겸 담배한대를 물기 위해 호프집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20살의 나는 남자는 자세와 폼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 이상한 신념 때문에 나는 역시나 그날도 폼을 잡았다. 일단 술집 앞에서 고독한 표정으로 거칠게 담배를 하나 물었다. 옵션으로 고뇌에 가득 찬 얼굴까지 장착했다. 그 포즈로 학교 앞 유흥 번화가 거리 한 복판에서 담배연기를 연신 내 뿜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하지만 그 때는 내가 생각해도 멋지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르시즘을 느끼면서 그 당시 고독의 상징인 정우성의 흉내까지 내고 있었다.
번화하기로 유명한 1번가의 번화가에 웬 거지가?그런데 거리가 좀 이상했다. 이 유명한 안양 1번가 번화가는 전반적으로 정리가 잘 되있는 곳이었는데 웬 거지가 한 명 보이는 게 아닌가? 길가는 사람들은 그 거지를 우수수 피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술이 취한 나는 내 눈이 이상한 것인지 혼동되어 자세히 쳐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내 눈앞 20여 미터 거리에 왠 흰색 나시티를 입은 거지가 푸시업 자세로 기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오바이트를 조금씩 해가면서 말이다. 마치 골룸이 계곡을 기어오듯 이상한 자세로. 점점 내게 가까이 지나가는 순간 나는 까무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헉! 바로 그 거지는 바로 내 친구였다. 체대를 다니는 그 듬직한 친구. 그 신뢰감 있는 친구'였던 것이다. 난 창피함에 여자후배들에게 고개를 들 수 가 없었다. 미친 듯이 친구를 들쳐업고 친구의 자취방으로 뛰었다. 그리고 음주 좀비 직전의 친구를 변신 전 간신히 재울 수 있었다. 다시 나는 송별회자리로 돌아가 정신없이 자리를 끝내고 친구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어떻게 된 것인지 이제 술이 깬 나의 듬직한 그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曰 "너희 학교 여자후배들이 너무 미인들이라 주는 술을 거부할 수 가 없었어" 라며 미안해했다. 그 날 그 친구는 사과를 몇 번 더 하였는데 전날 밤 친구 자취방에 커다란 피자(피자형태의 오바이트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를 몇 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송별회는 마무리 되고 있었다. 참고로 그 자취방 주인은 바로 우리를 해병대로 꼬시려 했던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