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의 책 <달리는 인생> 표지
오마이북
지난 4월에 둘째가 태어난 이후 강연 같은 공식적인 일정 외에는 집에 틀어박혀 아내와 함께 육아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하나 키우는 것과 둘 키우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며 '셋째는 없다'는 신념이 나날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접 대면해서 사람을 만나는 대신 SNS를 통해 소통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재잘거리는 트위터는 천성에 맞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길이 제한 없이 편안하고 진중하게 얘기를 풀어내는 페이스북을 선호하게 됐다.
한때 민주노동당에 몸담고 진보정치 활동을 열심히 했던 덕에 페이스북 친구 중에는 진보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달리는 인생>의 저자 김창현 역시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다. 1981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감옥에 가기도 한 그는, 울산에서 진보정치 실험을 나래를 활짝 편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이다.
경남도의원과 광역시의원, 울산 동구청장을 역임했으며 민주노동당 울산지부장,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언제부터인가 택시를 모는 얘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지?
나는 왜 택시를 시작했을까? 2012년 4·11총선 실패가 그 출발점이다. (중략) 나는 오랜 기간 당직과 공직 생활을 통해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고 말해왔으나 실제 삶은 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민적 삶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육체노동을 심하게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두고 치열하게 다퉈본 적이 없다. (중략)내 나이 훌쩍 쉰을 넘었다. 기술도 없는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힘들었다. 좋기로 따지면야 자동차 하청업체 같은 곳이 좋겠지만 내 얼굴과 내 이름으로 취업을 허락하는 기업체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제조업보다 취업이 용이할 거라는 생각에 택시를 선택했다. 그러나 택시 역시 선뜻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여러 곳에서 일단은 친절하게 맞아주었지만 아주 좋은 말로 거절했다. 그렇겠지.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출신의 정치인, 색깔과 과격으로 덧칠된 대표적인 진보정치인.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한데 찾는 자에게 길이 있다고 했던가, 사장님이 대학 선배고 경영을 노조가 직접 맡는 화진교통에서 내게 기회를 주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두고 치열하게 다퉈본 적이 없다"저자는 늘 노동자와 서민의 편에서 일하고 그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했으나 과연 얼마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그 처절한 고통을 알고 있는가에 대한 죄스러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죄스러움에 김창현은 2012년 여름부터 1년간 울산 시내부터 외곽까지 총 7만 킬로미터를 달린 택시기사가 됐다.
택시기사로 수많은 승객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간이 많았고, 이를 반드시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그 하나하나의 사연들을 페이스북에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기록을 단행본으로 모은 것이 <달리는 인생>이다.
울산에서 인지도 높은 진보정치인 김창현이 택시를 몰다보니 생기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다. 하루는 협성노블리스에 사는 간호조무사를 태웠는데 울산 남구 달동의 한의원에 근무하는 아가씨였다.
"어? 아저씨 정말 김창현씨랑 많이 닮았네요."택시 조수석의 자격증을 보더니 "어머, 이름도 김창현이네. 호호호. 참 신기하다. 아저씨. 주변에서 그런 얘기 많이 듣죠?""하하. 제가 바로 김창현 맞습니다.""알아요. 호호. 자격증에 나와 있네요. 그러니까 닮았다는 거죠.""허 참. 왜 이리 안 믿지요? 진짜라니까요. 통합진보당 김창현을 잘 아세요?""잘 알진 않지만 그 김창현씨는 얼마나 예리하고 말도 잘하고 인물도 좋은데요.""만나보셨나요?""그럼요. 시장에서 악수도 하고 텔레비전 토론도 봤는데요. 아주 샤프해요.""지금 저는 안 샤프한가 보지요?""아저씨는 살도 찌고 동네 아저씨 같잖아요."졸지에 샤프하고 말 잘하고 인물 좋은 진보정치인에서 살찐 동네 아저씨 택시기사가 된 김창현은 택시를 운전하며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됐지만, 특히 무엇보다 듣는 훈련이 된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는다.
정치인들은 정말이지 잘 듣지 않는다. 짧은 시간 내에 자기를 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인지 주장은 난무하지만 남의 아픔을 차분히 듣는 데 인색하다. 그런데 김창현은 택시를 하며 하루 열두 시간 앉아 많은 서민들의 애환을 듣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승객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절절한 심정이 되어 상담가가 되기도 했다.
하루 열두 시간씩 앉아서 들은 서민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