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의 자살자 추이
노원구청
지난 2009년 노원구의 자살자는 180명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고 수치였다. 2년 뒤인 2011년에는 30% 감소한 128명. 자살률의 경우도 서울시 자치구 중 7위에서 21위로 뚝 떨어졌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구내 자살 상담 건수가 2010년 52건에서 2012년 5048건으로 약 100배 증가한 것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누군가가 상담해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살 위험군을 파악해 '찾아다니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통장들이었다. 노원구 통장들은 1년에 한 번 적십자 회비를 걷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가깝고도 먼 이웃은 아니었다. 험한 욕지거리를 들어가면서 독거노인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아주 특별한 이웃이었다. 이들은 다른 지역 통장들과는 달리 대문 앞에 '사회복지사'라는 명패를 걸고 있다. 통장이라는 명칭은 그 밑에 조그만 글씨로 적혀 있다고 했다. 구청에서 달아준 '봉사 완장'이다. 통장들은 이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날 김성환 구청장과 함께 노원구 699명의 통장 가운데 임영복 월계1동 20통장, 엄순하 공릉1동 41통장, 김지현 중계본동 3통장, 최미라 상계9동 18통장, 김유미 상계9동 27통장을 모셨다.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 만남] 욕설과 고함, 그리고 문전박대 최미라 : "처음에는 좀 힘이 들었어요. 만날 수가 없었더라고요.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문을 두드렸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어요. 집 안에 계신 걸 아는데도..."
엄순하 : "저는 처음에 우울증 테스트를 하러 갔을 때 욕을 엄청 먹었어요. 사업을 하시다가 탕진하고 강북으로 이사 와서 혼자사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왜 통장들이 이런 짓을 하고 다니냐'면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임영복 : "어르신들에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어요?' '우울증을 겪고 계시나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쉽겠어요? 어렵습니다. 한 시간씩 문전박대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김지현 : "독거노인들뿐만이 아닙니다. 5식구가 단칸방에 사는 사람을 봤어요. 남편은 직장에 다니다가 급여를 떼이고 직장을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애기 엄마가 우울증에 걸려서 괴로워하는 걸 봤습니다."
최미라 : "우리 옆집 젊은 애기 엄마도 우울증에 걸렸는데, 심했습니다. 아이가 우는 데 방에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애기 엄마가 아파트 베란다 앞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을 여러 번 봤어요. 아찔했습니다. 애기 엄마가 문을 안 열어 줘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면서 오히려 면박을 주더라고요."
통장들이 이렇게 구박을 받으면서까지 독거노인 등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된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3월부터다. 노원구는 699명의 통장들을 대상으로 '보건복지 도우미'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2차례에 걸쳐서 교육을 이수한 통장들은 그해 4월부터 자살 위험군 조기 발견을 위해 독거노인 6902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선별조사(노원정신보건센터에서 제공한 심리검사지 이용)를 벌였다. 위의 대화 내용은 당시 통장들이 독거노인을 만나는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다.
김성환 : "그 뒤에 가족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도 우울증 테스트를 했습니다. 통장님들이 욕을 얻어먹으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통장님들이 없었다면 조사비용만 수십억 원이 들어갔을 겁니다. 이 조사를 마친 뒤에 통장님들의 입이 '대빨' 나왔습니다(웃음). 통장님들에게 너무 죄송해서 1만 원의 복지수당을 드렸는데, 그 정도 밖에 드릴 수 없는 형편이어서 여전히 죄송합니다."
노원구가 자살예방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0년 12월이다. 전국 자치구 최초로 '생명존중문화 조성 및 자살예방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전담부서인 '생명존중팀'을 꾸렸다. 이듬해 1월에 '생명존중문화 조성 및 자살예방을 위한 생명존중위원회'를 발족했다. 2월에는 동 주민센터에 '찾아가는 마음건강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노원정신보건센터 소속 정신보건전문요원 19명이 동 주민센터에서 우울증과 알코올중독검사 등 상당 서비스를 시작했다. 관청에서 시행하는 형식적인 서비스 중 하나가 아니었다. 위에서 제시했듯이 100배 올라간 상담 건수는 이런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