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자라 초상화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통령 궁인 카사 로사다에 걸려있는 체 게바라 초상화. (2011년 6월 사진)
정광주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 세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체 게바라(이하 체)이고 다른 하나는 마라도나, 그리고 마지막이 현재 로마가톨릭 수장인 프란시스코 교황이다. 지금은 축구선수였던 마라도나보다는 리오넬 메시가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세 사람 모두 20세기의 사람들이지만 체가 1928년생이므로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전 사람이다.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한 시간보다 밖에서 활동한 시간이 더 많았던 인물이며 아르헨티나 밖에서 더욱 유명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쿠바에서의 성공한 혁명과 비록 실패하였지만 볼리비아, 콩고 등에서의 활동으로 체는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혁명의 아이콘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체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의 궤적을 쫓아가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체라고 가정한다면, 그의 인생 어느 지점쯤에서 모험을 멈추었을까? 아르헨티나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거나, 쿠바 혁명 성공으로 카스트로에 이은 2인자가 되거나, 쿠바 중앙은행장, 또는 다시 콩고와 볼리비아의 혁명 참여 등. 그러나 나라면 아마도 쿠바에서 카스트로와 함께한 사회주의 혁명 성공 정도에서 만족해하며 주어진 권력을 향유했을 것이다.
체의 사회주의 혁명의 정치적 의의나 성과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가 추앙을 받는 이유는 그가 결코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체는 혁명에 의한 성공의 결과물을 개인적으로 향유하기 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었다. 소수의 권력자에 의하여 핍박받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자신의 희생에 더욱 소중한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던 신념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수많은 세계의 위인들은 모두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는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훌륭한 위인들 중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후 타의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그 편안함을 초연히 버리고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 다시 낮은 곳에서 새롭게 대중을 위한 고난의 길을 자초하며 걸었던 인물을 나는 체 게바라 단 한 사람 말고는 알지 못한다.
물론 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그가 부대를 통솔하면서 부대원들을 혹독하게 다루었다든가 또는 게릴라 활동 중에 붙잡힌 포로들을 잔인하게 처벌하였다는 비난도 있다. 또한 체가 쿠바, 콩고, 볼리비아에서 벌인 일련의 혁명과정에서 반혁명 세력과 수많은 농민들의 피해를 가져온 부정적인 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잘못된 과정과 결과는 체가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죽이면 결과적으로 살인죄가 되지만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세간의 이야기를 인용할 필요도 없다. 모든 위인들의 평가는 사소한 잘잘못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공과를 분명히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 체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