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월 1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3자 회담을 마친 뒤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과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배웅을 받으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지나 이명박 정부로 넘어오면서, '친북(親北)'이 '종북(從北)'이라는 프레임으로 변했다. 보수가 야당일 때는 다소 방어적인 '친북' 프레임을 쓰다가, 보수가 집권하자 공격적인 '종북' 프레임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는 '친박(親朴)'이 사라지고 '종박(從朴)'만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화되자, 수평적인 연대처럼 보였던 '친박'이, 수직적인 상명하복의 조직처럼 바뀐 것이다.
'친박'의 자리를 '종박'이 대체하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는 '복고'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 '새마을운동',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부활시켰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이에 질세라 새로운 냉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종북'을 만병통치약으로 만들었다. 지금과 같은 청와대와 여당의 정치·이념적 잣대라면, 대한민국 국민은 딱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종박'이거나 '종북'. 그 둘을 구별하는 족집게 감별사는 다름 아닌 '매카시 프레임'이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박창신 신부는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다. 1980년 6월 전북 익산에서 성당 관할지역에 '전두환 광주 살육 작전'이라는 유인물을 뿌렸다가 사제관에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어,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다리를 전다. 당시 '빨갱이 신부'로 낙인찍혔던 그가 지금에 와서는 '종북 사제'라는 틀에 갇혀버렸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박창신 신부 강론 중 일부를 문제 삼아 총공세를 퍼붓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에 묻고 싶다.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쉼 없이 진행된 매일 미사에 한 번이라도 참석해봤느냐고. 아니면, 225번의 대한문 미사 강론을 하루치라도 보거나 들은 적이 있냐고. 그것도 아니라면, 이 미사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는 내용인지 아느냐고. 정작 청와대와 여당이 관심을 가졌어야 했던 건 대한문 미사였다. 그 미사 강론에, 박근혜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국민행복 시대'를 열어나갈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대한문 앞에서는 마지막 미사가 열렸다. 그동안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 준 게 대한문 미사였다. 그 미사를 주관하고, 날씨가 맑으나 궂으나 한결같이 함께 했던 이들이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었다. 대한문 미사에 참석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대한문 미사는 생명을 살리는 동아줄 같다"고 고백한다. 대한문 미사가 시작되고 나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행렬이 멈췄다.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도 되살아났다. 대한문 미사는 소외되고 상처받은 많은 이들의 안식처였다.
매카시는 무엇 때문에 자멸했을까? 한국판 '매카시 프레임'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고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되묻고 싶다. '당신들의 조국은 어디냐'고. 매카시 공화국인지, 민주주의 공화국인지? 그리고 한 가지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 매카시가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 참고로, <한겨레>(11월 1일자)에 게재된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칼럼 '누가 매카시를 죽였을까?'라는 칼럼 내용을 소개한다.
"누가 매카시를 죽였을까? 아는가? 그는 자멸했다. 언제나 권력은 오만으로 무너진다.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왜 육군에도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떠들었을까? 발단은 징집영장이 나온 자신의 보좌관을 면제해 주거나 위원회에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육군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육군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삼아 육군-매카시 청문회로 반격했다. 매카시는 스스로 무덤을 팠다. 빨갱이 딱지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다, 들통이 난 것이다. 그리고 매카시를 정치적 자살로 이끈 것은 거짓말이다. 1950년 2월 국무부가 공산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고, 205명의 명단이 있다는 주장은 뻥이었다. 매카시 위원회가 소환한 그 많은 사람들 중,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매카시는 언제나 거짓말에 태연했다. 진실에 구애받지 않았고, 도덕을 중시하지 않았다. 매카시는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한두 번은 몰라도 모두를 반복적으로 속이기는 어렵다. 광풍이 지나갔을 때, 미국의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은 매카시즘을 '안보를 희화화'해서 오히려, 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단지 중국 연구자라는 이유로 위원회에 소환당했던 학자들은 더는 중국을 연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다. 북한 변수를 국내정치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하는 사람들은 안보에 관심이 없다. 분단 이후 모든 북풍의 공통점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만 유지하려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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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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