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서 '주요 언론 인권보도준칙 준수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가 열렸다.
이주영
인권보도준칙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 현장에서는 인격권·성평등·장애인 인권 보호 등의 준칙을 어기는 사례가 다수 발견되는 게 현실이다. 인권위는 22일 '주요 언론 인권보도준칙 준수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를 열고 이러한 문제점을 전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인권위의 의뢰를 받아 6월과 9월 두 차례 주요 신문·방송 보도를 모니터한 결과, 총 977건이 인권보도준칙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6월 조사대상인 3만1013건의 기사 중 인권침해 사례는 494건(1.6%)이었고, 9월에는 2만7735건의 기사 중 483건(1.7%)이 준칙을 어겼다.
이 가운데 언론들이 가장 지키지 않는 인권보도준칙은 '민주주의 인권', '개인 인격권', '성평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주의 인권' 준칙은 국민 주권을 훼손하는 표현을 자제토록 권고하지만 대다수 언론이 이를 어기고 있다는 게 미디어운동본부의 지적이다. 언론들이 빈번히 쓰는 '사회지도층', '상류층'. '특권층' 등의 표현처럼 국민을 낮춰보는 용어가 대표 사례다. 정치 기사에서 자주 쓰이는 '통치권자', '영수회담', '하마평 같은 권위적인 표현도 해당 준칙을 어기는 경우에 해당됐다. 인권보도준칙 해설용 참고자료는 '대통령', '고위 여야회담', '인물평'으로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고 제안한다.
'고객', '사은품' 같이 기업 입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해당 준칙에 어긋난 사례였다. 각각 '소비자'와 '경품'이라는 표현이 권장된다. 고가 상품을 뜻하는 '명품'이란 표현 역시 계층을 차별하는 의미가 담겨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선일보> 채동욱 사건 보도, '개인 인격권'&'성평등' 보호 준칙 어겨개인의 사생활을 함부로 폭로하거나 수사·재판 중인 사건을 다루면서 '무죄추정 원칙'을 지키지 않는 등의 '개인 인격권 보호' 준칙을 어기는 사례도 많았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 사건'을 보도하면서 일반인의 개인정보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개한 게 미준수 사례로 제시됐다.
성별을 불필요하게 강조해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장하는 표현을 쓴 언론 보도도 '성평등 보호 준칙'을 준수하지 않은 사례로 꼽혔다. 채 전 총장과 내연관계라는 의혹을 받은 임아무개씨를 '내연녀'라고 지칭하거나, '여검사'라고 굳이 표현하는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눈먼 돈' '꿀먹은 벙어리' 같은 표현은 '장애인 인권 보호 준칙'을 준수하지 않은 사례에 해당했다. 미등록 외국인을 '불법체류자'로 지칭하거나 성소수자를 '동성애자'라고 표현하는 등 이주민·성소수자 인권 보호 준칙을 어긴 경우도 있었다. 또한 노인·아동 인권보호 준칙 미준수 사례도 발견됐다.
보고회 토론자로 참여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눈먼 돈'이란 표현의 경우, 일반인들과 시각장애인들이 받는 느낌은 다를 것"이라며 "피해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하는 등 언론 수용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어 표현은 우리 사회의 관습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며 "표현에 담긴 잘못된 사고를 인지해 적절한 용어를 쓰도록 언론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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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내연녀' 표현은 인권침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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