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태풍 긴급구호무너진 폐허 더미에서 놀이감을 찾고 있는 아이들. 학교에 가지 못한지 벌써 14일째가 되었다.
이준길
하지만, 구호물자가 들어왔다고 해서 재해 이전의 모습을 곧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태풍이 지나간 지 2주가 흘렀고 세계 각지에서 전해지는 구호물자로 급한 위기는 넘기는 듯했지만, 태풍 하이옌이 남긴 상처가 아물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서운 재난이 지나간 자리. 하지만 사람들은 힘을 내 살아갑니다.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 아래 오랫동안 구호물자를 기다리면서도 현장의 활동가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손을 흔들며 웃습니다. 내일부터는 밥을 먹을 수 있다며 고맙답니다. 한 여성 주민은 저를 한 번 안아봐도 괜찮겠냐고 묻더군요. 서로 고맙다며 꼭 끌어안았습니다.
"아사 까 발라이?"(집이 어디니?)긴급구호 물품 지원 현장에서 저를 졸졸 쫓아다니던 아홉살 소녀 에멜린. 어디쯤 사는지 알고 싶어 물어봤지만, 괜한 질문을 했습니다. 예쁘게 웃던 아이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습니다.
"왈라 나 발라이."(집이 없어요.)학교도 무너져 수업도 중단된 상태입니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차량에 손을 내밀며 구걸을 하고, 폐허 더미를 뒤지며 놀잇거리를 찾습니다.
저희가 긴급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동안 맞은편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었습니다. 태풍은 지나갔지만, 아직 시신 수습도 벅찬 상황입니다. 격식을 차린 장례식은 고사하고, 간신히 수습한 시신을 굴착기로 판 구덩이에 한꺼번에 묻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론들은 태풍 하이옌이 지나간 지 오래 됐다고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을 폐허로 만든 태풍이 낳은 재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아이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이곳 주민들의 삶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보태면 좋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JTS 활동가들은 태풍 하이옌 피해지역의 1차 지원을 마무리하고, 이어 2차 지원 및 조기복구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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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자.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2기 수료. 마음공부, 환경실천, 빈곤퇴치,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많아요. 푸른별 지구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기자를 꿈꿉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생생한 소식 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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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 지나간 자리, 시신 묻을 경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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