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 있을 당시
김종훈
여기서 잠시 옛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나는 2009년 10월 학사장교로 40개월의 군 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한국을 떠났다. 그 후 2년 6개월을 공부하고 일하며 여행 다녔다. 거의 30개월을 외지에서 보낸 셈이다.
생각해보면 외국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영어 때문이었다. 나름 초·중·고 합쳐 12년 동안 영어를 배웠다. 대학에 와서는 남들 다하는 토익 공부도 했다. 이 정도 했으면 어디를 가도 입이라도 뻥끗 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처음 외국에 가서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하우 디쥬 파인 히어/How did you find here)"란 질문을 받았을 때, 앞에 '하우(how)'만 들렸다. 그 순간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답했어야 했는데 '토익 장수생'의 자존심은 그런 '굴욕'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칫밥으로 '하우(how)'를 통해 '잘지내?(하우 아 유/how are you)'를 유추해냈다. 100% 틀린 이해다. 문제는 자신있게 웃어 보이기까지 하며 "좋지, 고마워, 너는?(파인, 땡큐. 앤쥬/Fine, Thank you. and you)"이란 교과서용 답변을 날렸다. 계속된 상황은 모두 짐작할 것이다. 상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난 16년의 노력이 한 순간에 허망해졌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했던 공부가 그저 점수를 위한 토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데 이러한 사례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필리핀·인도·아프리카·호주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랬다. 토익 공부만 열심히 했지, 말하는 영어는 형편 없었다. 다들 벙어리 영어만 배워온 탓이다.
이때부터다. '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된 영어를 가르치자, 함께 모여 새로운 공부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 하지만 몰랐다. 이것이 진짜 시련의 시작이란 걸.
나 혼자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