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물을 때, 생각이 많아집니다. 사진은 <미나문방구>에서의 초등학교 학생들의 모습.
별의별
초등학교 교실 뒤쪽에 다닥다닥 붙여놓은 '장래희망'을 보더라도 변호사, 선생님, 과학자, 요리사, 발레리나, 의사…로 넘쳐난다.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엄마가 하는 일이 제가 알고 있는 '직업'이라는 두 글자와는 동떨어져 보이리라. 하긴 내 생각에도 딱히 선명한 이름이 없다. 노동조합 상근자? 노동운동가? 노동조합 활동가?
"엄마는 무슨 일을 해?" 아이가 물으면... 당신 딸이 언젠간 정치 쪽에 한 발쯤 담가서 친구들에게 자랑 한 가닥쯤은 할 수 있도록 기대한 우리 아버지 희망사항을 무참히 짓밟고 나는 스물여섯 현장에 들어간 이후 나이 마흔이 먹도록 지금까지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처음 현장에 있었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벌어오는 돈이 쓰는 돈보다 많았던 적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 흔치 않다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용돈 받아가며 살고 있다. 경제적 독립?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진보적 운동의 영역들이 다양해지면서 주변에 노동운동을 하는 선후배들보다 협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 다양한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보다 더 나을지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세월이 가도 노동운동하는 사람이 보편적 직업군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운동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긍심도 경제적 보상도 점점 멀어져가고, 남는 거라곤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낯선 내 자신과 피곤한 하루하루.
얼마 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자는 ( )이다"라는 설문을 진행했는데 그 답들이 어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일이 떠오른다. 괄호 안의 단어들은 우리사회가 '노동자', '노동'을 바라보는 지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불쌍한 사람', '덜 배운자', '가난한 사람' …. 그러면 내 딸들에게 엄마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쯤으로 보이려나?
먹고사는 문제를 논하기엔 너무 무거운 직업
주로 신규노조 설립과 교섭, 노동상담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인데, 금속노조 간판을 달고 있다 보니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정규직 대공장 노동귀족'으로 욕먹는 것도 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