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담임선생님을 늦지 않게 만나기 위해 부리나케 뛰었다. 이미지는 영화 <두사부일체> 중 한 장면.
필름지·제니스엔터테인먼트
나는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조금 더 잘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두 군데 대학에는 안전하게 지원했고, 한 군데는 소위 '배짱지원'을 했다. 내가 배짱지원을 한 곳은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이었는데, 본고사를 치렀다. 막상 시험장에 가보니 학교는 어찌 그리 크고 아름다운지, 입이 쩍 벌어지는 규모였다.
'TV속에서 보던 캠퍼스가 바로 여기구나! 정말 예쁜 여학생들도 넘쳐나고…. 아, 낙원이 따로 없구나!'본고사 날, 들뜬 기분이라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날의 시험과목은 아마 논술과 영어 정도였던 것 같다. 꼭 합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렇게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어느 날, 집 전화가 격정적으로 울렸다. 본고사를 본 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 제출한 서류 중 미비한 서류가 있다고, 추가해서 제출하라는 전화였다. 난 방학 중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무시무시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날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추웠던 건지.
"뭐? 진짜야? 추가서류 가져오라고 했다고? 선생님 지금 학교로 바로 갈 테니까 너도 교무실로 바로 와!"난 전화를 끊자마자 엉덩이에 불이나게 학교로 달려갔다. 그 무서운 담임선생님은 나의 얼굴을 보시더니 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온화하고 행복하고 기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소리치셨다.
"선생님들 저희 반에서 OO대 한 명 보냈습니다! 합격입니다. 아~, 기분 좋다! 합격이다! 만세! 만세! 만세!" 담임선생님은 기분이 한껏 '업'되셔서 내 손을 잡고 교무실에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삼창까지 했다. 담임선생님의 무서움도 잠시. 순간 나는 얼굴이 당근처럼 새빨게지며 무척 창피했다. 하지만 나도 갑자기 자랑스러운 제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그날 공포의 담임선생님과 나는 만세삼창을 섞은 춤까지 췄다. 선생님은 서울의 그 대학교까지 태워다 주셨고, 집에 오는 버스터미널까지도 손수 태워주셨다.
그 후로 어떻게 됐을까. 아쉽게 떨어진 건지 예비합격이었는지 그 뒤로 그 학교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서운함이 있었지만 새로운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재미에 금방 다 잊어버렸다. 하지만 가끔 생각난다. 그 추운 겨울날, 교무실에서 그 무서운 담임선생님과 만세삼창까지 하게 만든 그 학교.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그 대학교. 정말 다시 그 대학교에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다.
'그때 왜 그런 거니? 응답하라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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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담임'과 만세삼창까지 했는데... 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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