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열심히 그린다. 자신의 세상을.
박윤미
늘 익숙한 친구들과 뒹굴다 사회에 첫발을 딛고 직장으로 출근하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층층시하 시월드보다 더 무서운 '상월드(상사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기침소리 한번 내는 것도 조심스럽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나랑 맞지 않는 성격의 동료가 다가와서 자꾸만 친한 척 하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는 반찬들이 구내 식당에 즐비하다. 노래도 못 부르는데 회식 때 신입이라고 자꾸만 마이크를 주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것들 다 술술 잘 넘기고 5년, 10년, 20년 직장 생활을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눈만 뜨면 보이던 아빠,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보이니 우선은 불안하다. 그 불안을 울음으로 표현을 하면 왠지 우리 엄마가 어디선가 "철수야~" 하고 달려와 금세 나를 안고 집으로 가서 토닥토닥 해줄 것만 같다. 그런데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 아이들 엄마도 안 오는 건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괜찮아", "이거 먹자", "우리 책읽자" 자꾸만 다독여준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우는 게 선생님한테도, 다른 친구들 한테도 미안해진다. '그래, 여기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네?' 사실 놀다보니 엄마 생각이 별로 안 난다. 잠이 올 때 잠깐 잠깐 생각나서 투정도 부리지만 그래도 친구들이랑 노는 재미에 푹 빠져서 집에 가기 싫어질 때도 있다.
늘 엄마랑만 먹던 밥도 친구들이랑 먹으니까 매일매일 소풍 온 것처럼 맛있고, 잘 먹으면 선생님도 엄마처럼 칭찬해주신다.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놀이도 하고 한 달 정도 지나니 익숙해져서 오히려 주말이면 월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우리의 네 살, 다섯 살 아이들은 때가 묻지 않아서 의심도 하지 않고 잘 받아들인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그걸 느낀다. 그냥 상투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를 잘 다독여주는 것이 최고다.
아이는 엄마만큼 말한다 "언니, 아이가 어린이집 다녀오면 무슨 얘기해요?"나는 아이가 셋이다 보니 이런 질문 혹은 상담을 참 자주 받는다. 그럴 때면 늘 비슷하게 이야기해준다.
"너는 아이가 어린이집 다녀오면 무슨 이야기 해줘?"보통의 엄마들은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녀와서 있었던 이야기를 짐보따리 풀 듯 술술 풀어놓기를 기대한다. '아이는 엄마만큼 자란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서 '아이는 엄마만큼 말한다'로 바꾼다. 아홉 살 큰아이, 일곱 살 둘째, 세 살 막내까지 집에 돌아오면 일하는 나를 붙잡고 열심히 뭔가를 이야기 해준다. 나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먼저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찬아, 지난번에 택배 아저씨 배고프시다고해서 엄마가 사과 하나 드렸잖아? 오늘은 엄마가 택배 받을 일도 없었거든? 그런데 아저씨가 쑥 들어오시더니만 '이거 잡솨봐요' 하면서 붕어빵 한 봉지 던져주고 가시는 거 있지?""울아, 오늘 엄마가 꽂은 꽃 보고 손님이 조금 마음에 안 들어하셔서 엄마 기분이 많이 상했었거든? 그런데 나중에 손님이 전화오셔서는 받는 분께서 너무 좋아하셨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더라?""담아, 엄마가 오늘 책 정리하는데 사진이 한장 툭! 떨어지는 거야 글쎄, 보니까 엄마 어릴때 사진인데 우리 담이랑 똑같더라. 그러니까 우리 담이는 엄마 딸 맞는거야. 담이가 한 번 볼래? 네가 봐도 그럴 걸?"친구나 남편에게 이야기하듯이 소소한 일상들을 아이에게 이야기 한다. 우리의 세상과 아이의 세상이 다르다고 대충 넘어가고 말 안 해주는 것은 회사에서 돌아온 배우자가 "오늘 친구 누구 만났어? 어땠어?"라는 질문에, "니가 말한다고 알아?" 하고 무시하는 거랑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이들도 부모의 일상이 궁금하고 듣고 싶다. 그렇게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주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비슷해진다.
'아! 우리 엄마도 내 이야기가 듣고 싶겠지? 내가 어떤 생각하는지 궁금하겠지? 저녁에 아빠 오면 이야기 해줘야하니까 잠 안 자고 기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