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의 한 장면.
주피터필름
수습사원으로 첫 출근해 배치 받은 곳은 홍보팀이었다. 사장의 총애에 힘입어 기조실의 알짜배기 부서로 배치를 받았다. 나에게 맡겨진 첫 업무는 사보 편집과 홍보물 제작. 정말 어렵게 사장의 '관상' 덕택으로 구원받은 입사였기에 결코 게을리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의 의지는 정말 속을 꺼내서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전공이 글쓰기나 디자인 관련은 아니었지만, 남다른 열정으로 사보를 편집하고 각종 홍보물을 직접 디자인해 시간과 예산까지 절감했다고 칭찬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갔다. 하지만 사장이 말했던 초롱초롱한 눈매로 불타는 열혈 청년은 결코 나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의협심은 어디가고 어느새 조직의 발아래에 무릎 꿇고 있는 비굴한 조직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만든 사보도 사장 찬양일색의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그리고 사장이 나의 관상을 본 것처럼, 나도 2년간 사장을 지켜봤다. 그는 푸근한 인상의 인자한 사장님이 아닌 조직 두목의 포스, 그 자체였다. 회사가 탄탄하게 지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장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이 있었다. 비서실을 통해 부서장들을 시간 단위로 위치 파악을 하며, 종이 한 장 구입하는 것까지 사장의 결재가 있어야 가능했다. 이른 아침 사무실 쓰레기통을 뒤져 이면지라도 나온다면 사표까지 각오해야 했다. 이면지가 없는 경우, 새 종이에 보고서를 준비해야 하지만 사장에게는 그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경우에도 새 용지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니 밤새 새 종이에 일부러 엉뚱한 것을 복사하고 이면지 재활용 도장을 찍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또, 부서 간에 묘한 경쟁심을 유발해 이상한 대결구도로 몰아갔다. 자기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 직원과는 공사를 막론하고 접근을 막았다. 각 부서마다 감시자를 만들어 놓고, 회식자리에 다른 부서 직원이라도 함께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다음날 아침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사의 기밀이 돌게 되면 경영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주술에 빠진 사장님... 결국 사직서를 쓰다외형으로만 놓고 보면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였지만 실제 경영 방식은 동네 구멍가게 수준도 되지 않았다. 특히 사장은 미신을 굳게 믿어, 사무실 곳곳에 기괴한 형태의 부적을 붙였다. 회사의 전화번호를 정하거나 각종 행사의 날짜를 정할 때도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 점쟁이에게 자문을 구했다. 창문과 출입문의 위치부터 새로 건축할 주상복합건물의 위치 선정까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미신에 의존했다. 그야말로 '주술'에 빠진 사장이었다.
그런 사장의 믿음은 사람을 뽑을 때도 어김없이 작용했다. 반점이 눈 아래 있으면 말년에 외롭다는 관상학적 지식은 이때 사장에게 처음 들었다. 이런 이유로 얼굴만을 보고 재물운·회사운·결혼운 등을 운운하며 직원을 채용하고 해고했다.
하지만 뽑아 놓은 여직원을 보노라면 과연 사장이 전문가들이 말하는 관상으로 뽑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연예인 뺨치는, 필요 이상의 외모를 지닌 비서실 직원들은 관상이 아닌 미모나 인상을 보고 뽑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어디서 데려왔는지 임원으로 초빙한 많은 사람들도 하나 같이 관상에 의존했다. 돈 벌어다 주는 관상에 의존해 경영의 모든 것을 풀어내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수백 명이나 되는 직원을 아침 조회 때마다 사장이 일일이 출석을 불러가며 마치 군대 같은 복종과 폭력배 조직에 버금가는 획일성을 강요했다. 조회 시간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욕설을 들으며 해고된 동료, 사장과 해외 동행 출장 후 울면서 어김없이 사표를 쓰고야 마는 여직원들….
이러니 사장의 의중대로 각 부서로 배치된 각각의 인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오직 사장 한 명만을 위한 회사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항의하지 않았고 애써 외면했다. 조직 내 경쟁을 부추기는 경영 방침 아래 동료에 대한 배려보다는 '나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이 우선시됐다. 삶의 목적이어야 할 '정의'는 어느새 삶의 뒤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니, 그동안 사장의 개인적인 결정으로 회사를 떠난 선배들과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의 반 타의 반 사직서를 제출한 수많은 동료들을 그저 바라만 본 것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그들이 회사생활에 결함이 있거나 업무를 게을리 한 탓이었을까.
힘없는 동료들을 외면한 내 자신이 너무나 처량하고 한심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정말 이런 일이었나?'라는 회의감만 들었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이 모습이 과연 내 미래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