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조로 마을로 가는 길 모시의 달동네인 엔조로로 가려면 악취가 코를 찌르는 쓰레기 더미를 지나야 한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대낮에도 마약을 한다는 바나나 숲이 있다
이근승
끈끈한 공동체 연대의식으로 법이 그리 필요치 않았던 부족사회가 해체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빈부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사회 범죄는 늘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이를 제어할 국가 권력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생계형 범죄를 넘어서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계속되는 쿠데타, 독재, 부패 등으로 권력의 정통성이 부정되거나 스스로 대중들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하였으며, 그 결과 발생한 내전의 소욛돌이, 폭동 등 사회 불안과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기나긴 내전으로 인한 강간, 살해, 납치 등의 반인륜적 범죄로 세계적인 이슈거리를 만든 콩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반목을 조장하여 권력 쟁취에만 혈안이 된 나이지리아, 수십 년간 통치해온 독재 세력이 부패한 권력 집단임이 드러난 짐바브웨, 빈부의 차이가 하늘 땅 만큼인 케냐와 남아공에서 사회 불안은 일용할 양식만큼 중요한 생사의 문제가 되고 있다.
1960년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등장한 초대 대통령 쥴리어스 니에레레는 탄자니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120여 개가 넘는 부족을 통합하고 아프리카의 미래를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찾고자 하였다. 상공업주의의 환상에 사로 잡혀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고 무분별한 도시 개발에 탐닉한 여타의 다른 아프리카 신생국과는 달리 니에레레는 농업 생산력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우자마 운동 (탄자니아식 자력갱생운동)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탄자니아에는 아직까지 농촌의 공동체적 정신이 살아있다. 부족의 대립과 알력 혹은 이를 조장하는 정치 권력으로 인해 사회적 위기를 겪는 다른 아프리카 사회와는 달리, 탄자니아는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제 탄자니아도 변하고 있다. 행복의 최대 조건을 소유한 물질의 정도에서 찾는 자본주의의 파도는 이곳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더불어 함께 살던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기찻길 아래 자물쇠가 채워진 한 평짜리 움막에 몸을 담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소외된 자가 되었다. 킴비씨가 사는 집도 그런 곳이었다.
모두가 말렸지만, 킴비씨 집을 택한 이유 그래도 눈에 밟힌다. 철길 너머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킬리만자로 산에서 발원한 옹달샘이 실개천이 되어 흘러가고, 그 물을 받아 빽빽이 들어찬 바나나 숲. 그리고 동네 초입부터 반겨주는 꼬맹이들.
'애들이 예쁘다고? 며칠 지나면 네 집 들어와서 훔쳐가는 좀도둑으로 변할걸? 크하하하.'그래도 다행히 그곳은 빈민들의 거주지인 엔조로의 외곽이었다. 비만 왔다하면 수렁으로 변해 자전거도 머리에 이고 가는 달동네와 불과 100m 거리이지만, 그래도 엔조로에서 제일 번화한 지역이었다. 다른 동네로는 갈 형편이 못되지만, 지옥 같은 달동네를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차선책으로 사는 곳인 셈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허물어져가는 흙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미로처럼 뻗은 좁은 골목가로 시궁창물이 흘러내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자들이 배설하는 악다구니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는 옥수수 부대로 가린 공동 화장실의 냄새에 쫓기고, 널린 쓰레기 위로 윙윙대는 파리 떼에 도망치는 인간이다. 나는 슈바이처도 천사도 아닌, 자원봉사자란 옷을 걸쳤을 뿐인 그저 편리함을 좇는 이기적 인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