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평설 병자호란>
푸른역사
시대를 읽지 못한 친명사대주의자들은 수 만 백성을 포로로 잡혀가게 했고, 잡혀 죽게 했으며, 굶어 죽게 했다. <병자호란>은 독자에게 "병자호란은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현실'일 수 있으며, 결코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반추해야 할 'G2시대의 비망록'"임을 보여준다.
인조는 광해군이 지배한 조선을 "'금수의 땅'"이라며 반정을 일으켰다. 반정에서 성공하자 "다시 사람의 세상의 되었다"고 말했다. 조선이 금수의 땅인 된 것은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한 것이다. 특히 "부모와 같은 중국 조정을 배신하고, 후금과 화친한 것" 따위였다. 당연히 '숭명배금'(崇明排金)" 정책으로 이어진다.
인목대비 명의로 올린 주문이 명나라 <희종실록> 1623년 4월 29일자에는 "'우리 선왕들은 천조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해 감히 태만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광해군은 배은망덕하여 천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서 "광해군은 도의를 잃고 패덕하여 나라와 백성을 맡길 수 없었다"고 했다. 즉 인조정권은 명에 충성하고, 후금(청나라)과 싸우겠다고 아뢴 것이다.
명을 높이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명이 강성할 때지,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는 나라이면 달라야 한다.
"서로 싸우던 강국 사이에 끼인 채 자위 능력마저 없던 조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정과 외교 양면에서 극히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하지만 인조 정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집권 직후에는 논공행상의 난맥상에서 비롯된 이괄의 난 때문에, 반란 진압 뒤에는 오로지 '정권 보위'에 급급하다가 정묘호란을 만났다."(7쪽)정묘호란으로 형제의 나라가 되었지만, 인조는 '왕권 보위'에만 집중하고 준비하지 않았다. 결과는 비참했다. 인조가 이러니 집권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청 태종 즉위식에 참석한 이확과 나덕헌은 "오랑캐가 황제를 참칭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가 죽도록 맞았다. 명분도 실력이 있을 때 세울 수 있다. 실력 없는 약소국이 명분만 앞세다 비극을 맞은 것이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직전 조선 모습, 377년 지난 지금과 비슷 인조는 병자호란 직전 '오랑캐와 일전을 불사하자'는 명분론자들 손을 들어준다. 반정공신들 사병이나 다름없는 정예병을 원수에게 배속시키고, 압록강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부제학 정온의 직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 전쟁 직전 "점심은 평양, 저녁은 압록강"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이승만이 전쟁이 발발하자, 시민들 몰래 한강다라를 폭파하고 도망간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최명길이 '주화론(主和論)'을 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명길은 무조건 주화론을 주장하지 않았다. 척화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명길의 주장은, 척화하여 청과 싸우겠다는 결심을 굳혔으면, '공세적'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말로만 '척화'를 외치며 미적거릴 경우, 청군의 철기를 조선 영토 깊숙이 불러들이게 되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것을 우려한 계책이었다."(2권 67쪽)하지만 인조는 입을 다물고 답하지 않았다. 정예병 육성과 압록강 방어선 구축을 주장했던 정온도 "조선의 사수(射手)와 화포병(火砲兵)을 천하무적이라고 평가하고 그들을 활용하면 후금군 기병의 돌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 있었지만, 막상 청군이 앞에 도달하자 "지레 겁을 먹고 '천하무적'인 궁수와 포수들을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했다.
병자호란 직전 조선 모습이, 377년이 지난 지금과 비슷하다. 국방비 40배 이상을 쓰면서도 아직도 북한과 싸우면 진다는 주장까지 한다. 자기 나라를 스스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 자칭 애국세력이다.
한명기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을 '복배수적(腹背受敵)'이라 했다"면서 "'배(腹)와 등(背) 양쪽에서 적이 몰려오는 형국'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면의 중국 대륙과 배후의 일본 열도 사이에 '끼인 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반도가 '끼인 자'다. 아니 '미일중러'가 둘러싸여있다. 그래도 조선 인조 정권은 한반도 전체가 한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두 동강 났다. 병자호란때보다 내부와 외부 모두 열악하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희망이 있다. 병자호란을 직접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는 말로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 정세를 읽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한명기는 절박한 마음으로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활로를 찾으려 애쓰되 우리의 자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면서 "경제적 실력, 군사적 역량, 문화적 매력 등에서 주변 열강이 무시할 수 없는 '근사한 민주국가'가 되도록 노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맹자>에 보면 '7년 된 병에 3년 된 쑥을 구한다(七年之病 求三年之艾)'는 이야기가 있다. 한 달 묵은 쑥조차 없어 당장 죽어 가는 환자의 절박한 처지에서 보면 '3년 묵은 쑥'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쑥을 뜯어 놓아야만 그것이 '한 달 묵은 쑥', '1년 묵은 쑥', 그리고 '3년 묵은 쑥'이 될 수 있다. 비록 우리 세대는 그것을 먹지 못하고 죽더라도 후손들을 위해 '쑥을 뜯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2권 367쪽)
[세트] 병자호란 1~2 세트 - 전2권 - 역사평설
한명기 지음,
푸른역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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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이여, '병자호란'은 '과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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