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명이 한집에서... 킴비씨 가족을 소개합니다

[아프리카, 보통 사람들 이야기①] 왜 우리집엔 오지 않는 걸까

등록 2013.11.12 14:37수정 2013.11.1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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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까지 봉사활동과 여행으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3년은 황홀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되고 개인화되어 가는 우리에 대한 성찰이었고, 아직도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환희였습니다.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 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기자말


우리집 대문 킴비씨가 사는 집이자 내가 사는 집 대문
우리집 대문킴비씨가 사는 집이자 내가 사는 집 대문이근승
통나무를 잘라 만든 사립문을 열면, 왼편으론 이제 막 지은 내가 사는 집이 있고, 오른편으론 바나나 몇 그루가 서 있는 고구마 밭이 있다. 좀 더 들어가면,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마당 앞으로 쓰러질 듯 기운 흙집이 있다.

그 옆으로 난 소가 들어 있는 외양간과 닭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ㄷ자 형태로 된 안집이 나온다. 그리고 닭장과 안집 사이로 난 조그만 길을 따라 뒤꼍으로 가면 질퍽한 오물이 흐르고 수천 마리 날파리들로 눈뜨기조차 괴로운 돼지 다섯 마리를 키우는 우리가 있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킴비씨 집으로 이사온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 많아서였다. 자그만치 스무 명이 넘게 사는 집이다. 외국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도둑도 오금 저려서 오지 못할 거고, 탄자니아의 보통 사람들과 지지고 볶는 생활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떠날 때쯤 사람들로부터 한 보따리 '마음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에서였다.

킴비씨의 가족은 부부와 이남 삼녀의 자녀, 그리고 킴비씨의 여동생 부부가 에이즈로 사망해 거둬들인 두 여아(위니와 마미)를 포함하여 총 아홉 식구다. 또 먼 친척뻘인 스물한 살짜리 이브라와 그의 젖먹이 아들도 거두었다. 그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운전수 일을 접고 아내와도 이혼해, 현재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월 만 오천 원을 받고 일을 나가고 있다.

그리고 한방에 네 명의 딸들이 자는 방 옆으로는 시내에 있는 시장에서 일하는 세입자들이 두 달이 멀다하고 들락날락했다.


스무명이 사는 집, 참 가지각색입니다

킴비씨 둘째 아들 방 둘째 아들 포크와 염소가 사는 작은 방
킴비씨 둘째 아들 방둘째 아들 포크와 염소가 사는 작은 방이근승
마당앞 곧 쓰러질 운명인 흙집에는 방 두 칸을 빌려, 시내를 돌아다니며 중고옷을 파는 네명의 마마 자와디 가족이 산다. 그 옆방엔 킴비씨의 첫째와 둘째 아들인 지부티와 포크가 모퉁이에서 주워왔을 시커먼 스폰지를 삐그덕거리는 침대 위에 깔고, 아래엔 밤새 '메에' 울어대는 세 마리의 염소와 함께 잠을 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먹을것을 찾아 코를 킁킁거리며 집 주위를 돌아다니는 개 세 마리가 킴비씨의 마지막 가족이다.


이러니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과 가지가지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킴비씨의 집은 하루도 조용히 넘어간 날이 드물다. 마당은 동네 꼬마들이 노는 놀이터로 항상 붐볐고, 조무래기들이 사라진 야밤이 되어서도, 술 취한 세입자들의 고성방가와 자와디 가족의 부부싸움, 티격태격하는 사람들의 일상사와 여기에 화답하는 동물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게다가 배고픈 개새끼들이 돼지우리를 습격하는 날에는 어린 돼지 코빼기를 물고 달아난 범인을 찾아야 해서 잠자기는 틀렸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개 곡소리... 아침이면 처량하게 소와 돼지 우리에서 흘러 고인 오물 방죽에 처박혀 있는 개를 봐야만 했다.

아무리 철면피라도 이러면 안 될 듯 싶어 킴비씨에게 얘기했다. 내 집엔 방이 세 개나 되니, 아들 중 누구라도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게 어떻겠냐고. 한두 평짜리 방에서 온 가족이 사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무거워 견딜 수가 없다고.

몇 번을 그러겠노라고 넉넉한 웃음을 보여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킴비씨의 아들인 지부티, 포크와 이브라에게도 직접 얘기했건만 고맙다란 말뿐, 가타부타 확언을 주지 않는다. 탄자니아인들은 거절을 하는 경우엔 "아니오"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삼가고, "생각해 볼게요"라고 돌려서 말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깨끗한 곳에서 자고 싶을 텐데, 왜 오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왜 우리집에 와서 살지 않지?

마당 내가 살 던 바깥채 앞 마당
마당내가 살 던 바깥채 앞 마당이근승

매일 이른 아침이면, 안채에 딸린 하나뿐인 변소와 마당에 있는 수돗가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로 인해 부산하기 그지 없다.

비록 탄자니아식 아침 식사라는 것이 차와 빵 한 조각 혹은 우지라고 하는 옥수수죽이 전부다. 간밤에 혹여 몰래 사들고 온 과일 조각이나 고기가 남아 있는 집이라면 걸음걸이부터 종종걸음으로 변하여 아침 풍경은 더욱 부산해지고 만다.

남은 음식을 저장할 수가 없는지라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여나 옆집 꼬맹이에 들키거나 혹은 고기 냄새를 맡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기라도 한다면, 오붓하게 자기 가족들만 먹는 건 애당초 물건너 간 셈이다. 그럴 때면 다 먹어도 시원찮을 고기 몇 점이라도 사람 수대로 찢어 나누어 먹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저 사람은 경우가 없는 놈'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물론 몇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킴비씨 집에선 말을 안 해도 누가 간밤에 무엇을 먹었는지 다 안다. 하지만, 그래도 겉으로 표시만 나지 않는다면 서로간에 모른 체 해주는 것이 또한 넉넉치 못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인 셈이다. 이를 테면 옆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면 철딱서니 없는 아이라 할지라도 모른척 해야 한다. 어쩌다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눈치 없이 "고기 냄새 나~아" 할 때에야, 감춰뒀던 고기접시를 내놓곤 비로소 조금씩이라도 먹어보라고 나눠주며 부산해지는 것이다.

마당가 앞에 선 흙집 담벼락 밑에서 자와디 동생에게 풀죽을 먹이고 있던 마마 자와디(탄자니아에선 결혼한 여자를 아무개 엄마라고 부른다)가 내 눈에 딱 걸렸다. 모른 체 했으면 좋으련만, 호기심 많은 외국인이 옥수수 죽과는 사뭇 다른 죽을 놓칠 리 없다. '에구, 저놈의 므중구는 괜시리 눈을 마주친담?' 하는 눈빛으로 마마 자외디는 방에 들어가서 약간의 죽이 담긴 접시를 가져와 건네준다.

"마마 자와디, 고마워요.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우리 집에서 살라고 해도 왜 사람들이 오지 않는거죠?"
"그것도 몰라요? 므중구(외국인을 뜻하는 말)니까 그렇지요. 하늘 같은 므중구 집에서 속 편하게 살 사람,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나 같아도 껄끄러워서 못 살 거예요."
#탄자니아 #모시 #탄자니아 생활 #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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