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판결... '정의'를 흥정하려 한 법원

[주장] 뒤집힌 국민참여재판... 실종된 정의

등록 2013.11.11 16:56수정 2013.11.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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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도현(52·우석대 교수) 시인이 7일 전주지법 1호 법정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법정을 빠져나오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도현(52·우석대 교수) 시인이 7일 전주지법 1호 법정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법정을 빠져나오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형 배심재판인 국민참여재판에 대하여 곧바로 다시 글을 쓸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칼럼(관련기사 : '나꼼수 무죄' 낸 국민참여재판은 민주주의의 꽃이다)으로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기본 이론과 방향은 확인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비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민참여재판에서 가장 애매하고 취약하고 미묘한 문제가 터진 것이다.

법원과 배심원의 판단이 서로 다르고, 법원이 일반 여론의 눈치를 보는 사건이 등장했다. 안도현 시인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국민참여재판에서 법원이 배심원들의 전원일치 무죄평결을 뒤집고 유죄선고를 한 것이다. 배심원들의 판단보다 법관의 판단이 우선이라는 제도적 한계와 사회여론에 민감한 법원 중심적인 판단이 빚어낸 결과다.

현행 제도에서는 법관이 배심원의 평결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지금의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불완전하고 과도기이다. 원래 배심제의 이상은 시민인 동료가 직접 재판을 하는 것이므로 배심원의 평결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도기인 지금 법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법원은 배심원의 평결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법원이 다른 결론을 내리려면 배심원의 판단이 전적으로 오판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배심원들도 법관과 동일한 지위에서 "법령을 준수하고 독립하여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한다. 사실을 인정하는 데 필요한 논리법칙과 경험이 법관보다 모자라지 않다. 오히려 사회생활 경험은 더 풍부할 수 있다. 법관이 오판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법원이 배심원과 다른 결론을 내리려면 배심원들의 결론이 자신의 심증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배심원들의 구성이 잘못되어 있다는 점, 재판과정에서 배심원들에게 잘못된 증거와 설명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조적으로 배심원들의 판단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배심원 결론 뒤집으려면 법원 스스로 '오판' 증명해야

대표적인 사례는 배심원들이 편견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거나 증거로 할 수 없는 증거가 법정에서 제출된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법관의 자유심증이 배심원의 자유심증보다 더 낫다고 할 심리적, 규범적, 경험적 근거가 없다. 이번 사건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냥 법관의 판단이 배심원의 판단보다 낫다는 것에 그쳐버렸다. 국민과 배심원, 피고인을 설득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재판인 것이다.


형사재판의 원칙은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이다. 한 명이라도 억울하게 국가권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만큼 형사재판의 결과는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 원칙을 배심제에 적용해보자. 배심원의 평결과 법관의 평결이 다를 경우, 배심원들 사이에 유무죄가 다를 경우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당연히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야 한다. 바로 이런 경우가 피고인이 유죄인지 아니면 무죄인지 의심스러운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번 안도현 시인에 대한 재판은 이와 같은 형사재판의 원칙에도 충실하지 못한 재판이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배심원의 평결은 따르지 않고 양형에 이를 반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무죄 판단은 정의의 영역이다. 정의는 서릿발과 같아서 시퍼렇게 한 인간을 단죄한다. 그것도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아무리 형량이 적어도 유죄는 유죄일 뿐이다. 정의는 양보나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어슬픈 타협의 대상은 더욱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정치권의 비판을 수용하여 유죄를 선고하되 가장 경미한 선고유예를 하는 지혜를 발휘했다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의의 원칙에는 충실하지 못했다. 피고인의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법원의 입장을 앞세웠다. 나아가 이번 판결이 정치권에서 쏟아진 일부 비판을 인정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배심제의 근간, 사법부 독립의 근간을 법원 스스로가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의 독립은 정치권이나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지 배심원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다.

국민참여재판, 한 사건 결과에 휘둘릴 제도 아니다

배심제는 국민주권주의, 민주공화정의 원리를 구현하는 제도이다.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도입된 제도이고 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다. 배심제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오제이 심슨 사건과 같은 일부 사건에서 불만이 있지만 배심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없다. 나아가 배심원이 아닌 법원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없다. 또한 정치적 사건이나 민감한 사건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다.

사실 이러한 사건들이야말로 오히려 배심제가 적용되어야 하는 사건들이다. 만일 이러한 사건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불합리한 차별이고 배심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배심제는 배심제 축소 주장이 성립할 수 없을 정도의 민주적 정당성과 논리적 완결성, 역사적 성과를 가지고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이 배심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법원도 이러한 무게를 알고 국민참여재판에 임해야 한다. 법원 스스로 제도의 일부 미비점을 극대화해서 배심재판과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국민참여재판의 일부 미비점을 들어 배심제를 공격하는 언론은 법원이 중심을 잡는다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를 바꿀 만한 사건들이 줄줄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청구사건, 전교조의 노동조합 자격박탈사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 국정원·경찰·국방부·국가보훈처 등의 선거개입사건 등 당장의 사건만 해도 엄청나다. 앞으로 이러한 사건은 속출할 것이다. 공안라인이 국가권력의 중추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들은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리가 아니라 법정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하여 국가를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법원은 이런 기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법원 중심의 판단, 법원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재판은 최악이다. 1970~1980년대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목소리, 시민의 목소리, 배심원과 변호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국민참여재판 #김인회 #한국미래발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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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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