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민주주의, 미국 민주당도 반국가단체?

통합진보당 해산 추진... 경제민주화, 통일 문제 등 야권을 향한 이념공세 전초전

등록 2013.11.09 20:33수정 2013.11.0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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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진보당의 해산 사유로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주권, 연방제, 주한미군 철수를 제시했다. 이러한 주장은 전형적인 '종북 딱지 붙이기'로 읽힌다. 이름만 같다고 반국가적이라고 한다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명이인인 사람을 반국가적 인물로 보는 것과 같은 황당한 논리이다.

법무부가 김대중 대통령의 연방제 통일방안, 한나라당 총재와 대통령 후보를 지낸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의 강소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주한미군철수 역시 자기나라에서 외국군대가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고 진보당의 강령을 보면 남북평화방안를 전제로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하고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다소 낮 설은 보통명사라서 설명이 필요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20세기 초 미국 민주당 노선

진보적 민주주의는 보통명사로서 다양하게 쓰였다. 공통적인 의미는 급진적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는 의미이다. 미국 민주당과 같은 중도진영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방치하는 보수적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진보적 민주주의(progressive democracy)를 오직 김일성 주석의 진보적 민주주의로만 알고 있는 정부와 검찰의 편견에 경종을 울리고자 미국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미국은 1890년부터 1920년까지 대기업의 규제, 노동자 보호, 자원보존을 강조하는 진보시대(Progressive Era)를 거쳤다. 미국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사실상 이 진보시대에 형성되었고, 흥미롭게도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한국 민주당의 브레인들 역시 경제민주화의 원형으로 이 진보시대를 자주 거론해왔다.

홍종학 민주당 의원은 1912년 대선에서 공화당, 진보당, 민주당, 사회주의당의 4후보들이 경제민주화 놓고 격돌한 것을 진보시대 미국 경제민주화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았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 역시 문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설명하면서 이 진보시대를 예로 언급한 바 있다.

진보시대에 경제민주화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발전하였는데, 진보적 민주주의는 시민권의 확대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요구하는 미국의 진보시대의 정치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1910년 <The Promise of American Life>, 1914년 <progressive democracy>를 출판한 허버트 크롤리에 의해 신국민주의로 더욱 체계화되었다.


나중에 진보당을 창당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뉴딜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진보적 민주주의 혹은 신국민주의 노선을 실행에 옮겼던 대표적인 민주당 정치인이다. 그 외에도 알프레드 E 스미스 전 대통령 후보, 제임스 M 콕스 전 대통령후보, 로버트 H 잭슨 전 법무부장관 등 많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Progressive democracy>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기기도 하였다. 관련된 저서도 구글에서 검색하면 여러 권이 나온다.

사회주의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일본과 독일의 전체주의와 반대


정부와 검찰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와 같다고 하는데,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무지일 뿐이다. 인민민주주의는 사회주의 정권이 사회주의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의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중국의 국호가 중화인민공화국인데, 이들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마자 처음 실시한 정책이 인민민주주의정책이다. 사회주의 국가가 인민민주주의 국가를 거쳐 정치경제사회의 구조를 점차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반면 2차 대전을 전후로 하여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본, 독일과 같은 전체주의적 파쇼적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의미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사용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이 역사적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이유는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항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자본주의 국가와 연합군을 형성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파쇼에 대항했던 인민전선의 문제의식과 비슷한 것이다.

2차 대전을 전후로 하여 소련공산당이나 박헌영과 같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독립기념관이 편찬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57권 '광복 전후 국가건설론' 부분에 따르면 해방 전후 중도와 좌익진영은 제국주의 일본의 민주주의를 파쇼민주주의, 가짜민주주의로 보고 그 대안으로서 '진보적 민주주의' 혹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같이 사용했다.

해방 전후에 여운형, 박헌영, 김일성 등 사회주의세력들이 하나같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건국노선으로 주장한 것은 그 당시 사회조건에서 사회주의 혁명보다는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시급했고, 또한 미소화해 정세에서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는 소련군과 미군의 동의를 얻어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면 사회주의와 같은 특정이념을 주장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미소가 냉전에 돌입한 이후 남북이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길로 건국에 나서자, 진보적 민주주의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고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한 것만 보더라도 진보적 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같지 않다.

2차대전 이후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국가 내에 있는 사회주의정당이 선거 등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정치경제적 발전을 점진적으로 이루어 나간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즉 혁명노선이 아니라 합법노선을 채택한다는 의미이다. 프랑스의 공산당과 이탈리아공산당이 과거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 같은 의미로 주장했다. 따라서 정부의 주장대로 강경한 사회주의노선을 삭제하고, 온건한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했다면 더욱 문제될 것이 없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보편적 복지,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주권확립과 평화통일

진보당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강령을 삭제하고 그 대신 완전한 삼권분립, 복수정당제, 국민의 지지율이 제대로 반영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 사상과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 직접민주주의 강화, 보편적 복지, 재벌의 독점 금지와 공공산업의 국공유화, 남북교류와 평화통일 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공산당 일당체제나 3삼권분립을 부정하는 소비에트 혹은 최고인민회의 설치, 사유재산의 부정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없으니, 인민민주주의는 물론 김일성의 진보적 민주주의와도 다르다.

조봉암의 진보당 강령은 한국식 사민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는데, 유럽식 보편적 복지와 미국식 뉴딜정책의 경제민주화를 빌려왔으며, 정치적으로는 해방 전후의 진보적 민주주의, 주권확립과 평화통일에 의한 통일국가 논의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조봉암의 진보당 강령은 미국의 진보시대와 뉴딜정책을 언급하면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수정자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조봉암의 한국식 사민주의는 양자 모두 유럽식 복지, 경제민주화, 정치개혁, 평화통일 등을 강조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조봉암의 '진보당'과 민주노동당을 계승한 '진보당' 그리고 미국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을 고수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창당한 당의 이름도 '진보당'으로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념적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주장하는 민중주권은 노동자에게만 주권을 주자는 말이 아니다. 진보당 당헌 전문에 따르면 진보당은 "노동자·농민을 비롯해 모든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중 정당"이며 "국민이 주인 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강령과 정책을 가진 정책 정당"이다. 또한 민중주권이나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당의 정치분야 강령이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구조를 확립하고"라고 선언하듯이 소련의 소비에트나 북의 최고인민회의와 같은 통합적인 국가기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진보당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그 내용으로만 보면 조봉암의 진보당 강령이 내세우고 있는 한국식 사민주의, 미국 진보시대와 뉴딜정책에 유래하는 민주당 좌파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유사하다. 특히 한국 민주당의 경제브레인들이 미국 민주당 좌파의 경제민주화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공세는 향후 재벌개혁, 공공산업 민영화와 국공유화 등의 이슈에서 전체 야당에 대한 이념공세로 확전될 수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 #김일성 #진보당 #정당해산 #루즈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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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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