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 국민참여재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도현(52)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10월 28일 열렸다.
연합뉴스
셋째, 재판부의 직업적 양심론은 법관으로서의 처신에 결정적 문제를 드러낸,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자기합리화의 기제라는 점이다.
사실, 재판부가 당일 국민참여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고, 배심원들로 하여금 충분하게 심증을 형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나온 무죄평결이 법관의 심증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판결선고를 연기하였다면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판사의 조치를 쉬이 비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일 국민참여재판 내내 자신의 심증을 배심원들에게 관철하고자 집요한 시도를 했다.
①우선 재판장은 재판장으로서 배심원들에게 형사재판에서의 대원칙인 검사의 입증책임과 증명력의 정도에 관한 대법원의 확고한 법리 설명, 즉 "형사재판에서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판례의 제시와 설명을 생략했다.
추측컨대, 배심원 선정절차에서 변호인이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이 원칙을 묻고, 이 원칙에 대한 의견을 질문한 것을 그러한 설명으로 대체한 것으로 갈음한 모양이나, 같은 법리라도 변호인이 설명하는 것과 법관이 설명하는 것은 배심원들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뿐더러 변호인의 설명도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판례의 설명은 형사재판에서 결정적 의미를 가진다. 증거가 없어 무죄가 선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②또한 쟁점을 배심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재판장은 가령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에 있어서 확립된 대법원의 판례라고 할 수 있는 "허위사실공표죄에서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하여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이 존재한다고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의 증명을 할 수 있다"는 판례만 소개하고,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의 허위사실공표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검사가 공표된 사실이 허위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것이 필요하고,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판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뒤의 생략된 판례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은 물론이다.
③나아가 재판장은 변호인의 변론의 중간에 개입하여 변론의 흐름을 끊고 간섭하면서 변호인을 핍박하여 변론을 파행시켰다. 가령 변호인의 모두진술 중간에 개입하여 공소사실에 다투는지 결론을 말하라고 강요하고, 변호인이 모두진술에서 증거자료의 일부를 피피티(PPT)로 보여주는 대목은 증거조사에서 할 것이라면서 이를 하지 못하게 제지했다. 증거조사 절차에서도 증거 가운데 피고인에게 유리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피고인의 공소사실과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을, 그것은 의견을 밝히는 절차에서 하라면서 또한 제지하였다. 일반 재판에서야 증거조사절차를 재판장이 말한 방식대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심원들에게 그 방식대로 하면 배심원들은 그러한 증거의 기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설명이 필요하다.
④재판장의 이러한 편파성은 사실 국민참여재판 기일 이전에도 나타난 바 있다. 참여재판이 열리기 사흘전인 10월 25일 오전 11시경 필자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온 재판장은 당일 국민참여재판을 저녁 7시 전에는 끝내야 한다면서 피고인 신문과 최후변론을 각 15분 내에 끝내라고 했다. 서울 등 국민참여재판기일이 새벽까지 진행되는 것이 통상적이었고, 공판준비기일에 국민참여재판의 종료시간을 구체적으로 잡아놓지 않았기에 변호인단은 피고인신문은 30분 가량, 최후변론도 1시간 가량으로 준비해 이미 피피티(PPT)까지 제작을 완료해 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해 달라고 간곡하게 재판장에게 말하였으나, 늦어도 오후 7시 30분에는 재판을 끝내야 한다면서, 피고인신문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으면서 중복되는 것은 모조리 변론권을 제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변호인들은 하는 수 없이 오후 7시까지 재판을 마치는 안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그렇다면 변호인의 변론시간이 150분이 되도록 보장해 줄 것을 간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보장하겠노라고 하여 국민참여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변호인들은 타이머까지 마련해 모두진술, 증인신문, 증거조사절차, 피고인신문, 최후변론까지 시간을 지키고자 했으나, 검찰이 동영상 재생과 증거조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당일 심리는 예정한 오후 7시를 훨씬 넘겨서 오후 9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재판장의 이러한 일련의 모습을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 자신의 심증대로 배심원들을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를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판례도 피고인에게 불리한 것만 소개하면서 유리한 것은 누락하고, 변호인의 변론에는 수시로 개입하여 맥을 끊고, 변호인을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것 등은 이러한 의도의 발현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렇게 배심원들에게 불공정한, 어떤 특정한 결론으로 배심원들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임한 재판에서 오히려 배심원 전원 무죄평결이 나오자 이를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내세워 배척하는 것에 어떤 도덕적 정당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점과 관련하여 하나 더 지적할 것은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평결을 배척한 이유 중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사안의 성격상 배심원의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그 판단이 좌우될 수 있다'는 논거들은 사실 검사가 애초 이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회부를 반대하면서 펼친 논거라는 점이다. 그러한 검찰의 반대의견을 물리쳐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기로 해놓고는 막상 배심원들의 평결이 자신의 심증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할 것이면 도대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더구나 변호인이 제시한 도록 등 자료와 변호인의 어려운 법리설명을 끝까지 경청하여 그에 따라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견지에서 평결결과를 도출한 배심원들에 대하여 '배심원의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그 판단이 좌우될 수 있다'고 판결선고에서조차 언급하는 것은, 배심원 평결 이후에 진행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의 부적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배심원들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그들의 배심원의 직책수행의 자긍심을 손상시켜 긍극적으로 법원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아주 잘못된 처사다.
국민참여재판에 치명상 입힌 판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평결과 법관의 심증이 불일치할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쟁점이다. 이를 헌법상의 민주적 정당성과 법의 지배 이념간의 충돌, 조화의 문제로 접근한 재판부의 입론(立論)은 경청할 내용이다. 또한 이 문제를 입법적 결단으로 풀어야 한다는 언급도 귀담아들을만 하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의 근본 취지를 심대하게 훼손시켰다. 이미 사전에 지적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 배제결정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에게 재판부의 심증을 관철시키고자 시도했다. 그러고도 만장일치 무죄평결이 나오자 언론에 대고 감성적 평결 운운하면서 법관 스스로의 권위와 신뢰에 먹칠을 했다. 그러한 부적절한 처신으로인해 국민참여재판은 기로에 서게 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리고 결국 선고날에 법관의 직업적 양심론을 구체화하여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무죄평결을 배척하고 말았다.
이 판결로 재판부의 직업적 양심은 수호됐는지 모르겠지만, 작게는 8명의 배심원들의 명예와 자긍심이 무참하게 짓밟혔고, 크게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하여"라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의 목적도 치명상을 입었다. 수호되어 남은 것과 상처입고 비틀거리는 것을 비교하면 어떤 것이 보다 본질적이고 우월적인 가치일까? 안도현 시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담당한 재판부가 깊이 성찰해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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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딱 한뼘씩만 사회가 진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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