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

주남저수지에서 만난 나비... 인간이 망치는 생명의 터전

등록 2013.11.05 14:56수정 2013.11.0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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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는 뭇 생명의 놀이터다.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는 뭇 생명의 놀이터다.임현철

(조심스레 다급하게) "이거 보셨어요?"
(웬 호들갑 하며~) "뭘요?"
(아쉬운 목소리로) "제 얼굴에 앉은 잠자리요. 에이~, 날아갔네."
(부럽다는 듯) "잠자리가 얼굴에 앉다니 자연이네요."


그랬다. 주남저수지 인근의 창원 단감의 달달한 향에 미친 잠자리였을까? 아님, 창원 단감 맛에 빠져 정신없던 잠자리였을까?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날개를 터득이던 잠자리였다. 잠자리가 내 뺨에 앉다니…. 무척 황홀했다. 주남저수지를 같이 걸었던 지인이 잠자리와 친구 된 모습을 보았다면 날 어설픈 도인쯤으로 여겼을까? ㅋㅋ~^^

'잠자리에 왜 내 뺨에 앉았을까?'

개의치 않았다. 주남저수지에 그저 잠자리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대만족이었다. 잠자리가 찾아든 이유가 있었다. 잠시 접고 추억 속으로 빠져 보자. 대학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6년 전, 나비와 친구 된 적이 있었다. 이때의 감흥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신 호접지몽, '외로워서 왔니? 이리 와 친구 되어 줄게!'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임현철

 코스모스 핀 주남저수지의 둑길은 추억의 길이다.
코스모스 핀 주남저수지의 둑길은 추억의 길이다. 임현철

해가 뉘엿뉘엿 산자락을 넘을 무렵, 방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갈 길 잃은 나비임이 분명했다. 왜 그랬을까. 나비를 보자, 장자의 나비의 꿈(호접지몽 胡蝶之夢)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당찮게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세상을 즐겼지만 난 현실에서 나비가 되어 놀아 보자'란 생각을 했다.


나비는 방 안 창문틀 주변을 날면서 쉴 곳을 찾고 있었다. 호흡을 골랐다. 잡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나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생각이 집중되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우주와 하나, 물아일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길을 잃었니? 외로워서 왔니? 이리 와 친구 되어 줄게!'


몇 번이나 텔레파시를 보낸 후에야 나비가 움직였다. 나비의 날개 짓이 유유자적 허공을 가르는 온화한 천사의 비행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나비는 쉬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비가 멈춘 곳은 내 머리 위에 있던 옷걸이였다. 나비는 '저 인간에게 가도 안전할까?' 탐색 중이었다. 큰 숨을 내 쉰 후, 호흡을 멈추었다. 그러자 나비가 내 어깨에 와 앉았다.

손바닥을 폈다. 나비가 사뿐히 손 위에 앉았다. 감동이었다. 묵언. 나비에게 작별을 고하며 갈 길을 일러 주었다. 나비가 방안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이때까지 걸린 현실 속에서의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정신세계에선 찰나요, 영겁의 시간이었겠지만….

이 사건 후, 자연과 하나 될 틈이 없었다. 다만 하나 되려는 노력은 간간히 했었다. 그러나 진정성은 찾기 어려웠고, 마음뿐이었다. 세상에 물든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비와 나눈 무언의 대화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제목,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

 주남저수지는 자연스러움 자체다.
주남저수지는 자연스러움 자체다.임현철

 주남저수지 둑길에 버려진 인간 문명의 산물 TV.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그림으로 만들었다.
주남저수지 둑길에 버려진 인간 문명의 산물 TV.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그림으로 만들었다.임현철

그랬는데, 잠자리가 날아든 것이다. 주남저수지에서. 나는 마음을 열지 못했었다. 다만, 주남저수지 초입에서 본 볼품(?)없는 홍시에 넋이 빠져 있었을 뿐. 그러니까 잠자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날아 든 것이다. 그것도 주남저수지 둑길을 걷으며 새 무리에 날개 짓에 눈길을 주던 참에. 이렇듯 생명들은 앉을 곳을 쉼 없이 찾아 나선다.

지난 2일, 주남저수지에는 연꽃, 갈대, 억새가 어우러져 있었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둑길엔 가을이 차분히 앉아 있었다. 해가 생산한 영양분을 마음껏 먹으며 철새와 텃새, 잠자리, 메뚜기 등이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남자가 새들의 날개 짓을 이정표 삼아 묵묵히 폐달을 밞고 있었다.

어디쯤 일까? 주남저수지 둑길에 TV가 버려져 있었다.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품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했다. 제목,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땅에 앉았다. 고추잠자리의 빨간 색이 자연의 평화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철새와 사람 등 뭇 생명이 주남저수지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모두 하나 되기 위함이다. 생명의 터전을 빼앗긴 영혼들이 생명을 이어가려는 처절한 몸짓. 그렇지만 인간은 점점 생명의 터전을 밀어내려 하고 있다. 그 어리석음은 후세가 고스란히 넘겨받을 터. 자본주의에 물든 인간의 아둔함은 이를 망각하고 있다.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잠자리가 내 뺨에 앉은 건, 자본주의에 보내는 무언의 경고였다!

 주남저수지 둑길에 앉은 잠자리.
주남저수지 둑길에 앉은 잠자리.임현철

 주남저수지가 그리는 풍경은 그냥 자연이다.
주남저수지가 그리는 풍경은 그냥 자연이다.임현철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주남저수지 #잠자리 #호접지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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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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