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험수능시험장 풍경, 이런 풍경이 사라질 날은 있는 것일까?
김민수
30여년 전, 내가 대학합격증을 받았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 같았다. 그러나 80년대 초반의 시대 상황은 대학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삶을 강요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딸들의 대학생활을 보면 시샘이 나기도 한다.
하소연처럼 '공부만 해도 되니 얼마나 좋니?' 하면, 뭔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라고 반문한다. 그래도 그때는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하기 쉬웠지 않았냐고 한다. 그때는 대학등록금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 가능했으니 좋은 시절이 아니었냐고 한다. 나는 궁색하게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 대로, 청춘이니까 좋은 것 아니냐고 한다.
나도 작년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할 뻔했다. 학위를 위한 공부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던 다짐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놈의 '박사학위'라는 것이 발목을 잡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흔들렸었다. 결국,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도 없었다. 학위와 관계없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된다고 위로하며 관심 분야의 전문서적을 한아름 사서 책상에 올려두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대학'이라는 관문이 통과제의적인 것이 되어있다. 어찌 되었든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무엇이든 이룰 생각을 하지 말라고 횡포를 부린다. 그 와중에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도 추억이 되어버렸다. 돈이 없으면 대학도 못 가는 시대, 대학에 못 가면 온갖 불합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시대, 대학을 졸업해도 든든한 줄이 없으면 취업도 하기 어려운 시대, 그런 시대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대학에 목을 매고 살아간다. 마치 대학이 무슨 알라딘의 '마술 램프'라도 되는 것처럼. 그 주술에 걸려버린 대한민국, 거기에서 수험생도 가족들도 행복할 수가 없다.
또다시 입시의 계절이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까? 다양한 인격체들이 획일화된 시험문제를 풀고, 거기에 합격한 이들만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환상을 심어준 입시제도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그렇게 비인간적임에도 우리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욕심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입시가 뭐길래?' 대한민국에서 입시란, 자신의 꿈을 난도질당할 수 있는 칼날이다. 그 망나니 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너무 가까이에서 바라보다 제 목이 베일 수 있는 형틀이다. 그 형틀을 위태위태 통과한 이들은 이젠 시퍼런 작두 날에서 무당처럼 뛰길 강요당한다. 이런 난장의 굿판에 빠져들지 말고, 보기만 해도 좋은 청춘을 만끽하며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 이것도 허황한 꿈일까?
입시에 목매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면 답은 뜻밖에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만일 목을 매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면,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공부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자. 어차피 공부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 몇 등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락에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안다면, 이 세상은 당락에만 관심이 있다 한들, 자신에게는 떳떳하지 않겠는가? 그런 뚝심으로 살아가면 못할 일은 또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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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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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이 여친 잡아두려고 재수 꼬드긴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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