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내 어머님...당신은 내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천사님이셨습니다.
신광태
그 후로 보살님이 이사했는지, 돌아가셨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우리 삼형제 모두는 20대를 맞았고, 난 1982년에 군에 갔습니다.
고참들의 괴롭힘, 이유도 모르고 당하는 구타... 세상에 이런 지옥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당시 내가 겪은 군대는 그랬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단체생활은 적응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검정고시를 봤고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최고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자만 득시글거리는 세상에 던져진 겁니다. 많은 전우들 앞에서 '고문관' 소릴 들을 정도로 군 생활에 유독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병장이 돼 겨우 군 생활에 적응할 즈음, 제대를 했습니다. 당시 '사회에 나가면 뭘 하나...'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남들 간섭받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뭘까?"스님이 되자! 답은 간단히 나왔습니다. <반야심경><천수경><금강경> 등 불경을 사놓고 2년여 동안 참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뚜렷한 목표 때문이었을까요? 그 긴 <금강경>도 단숨에 외웠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야 스님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님도 특별히 말리는 기색 없이 '난 네 놈이 스님의 길로 들어설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형님은 성격이 외향적이고 활달했으며, 동생은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열외'라고 생각하신 듯합니다. 둘째인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뚜렷한 특징도 없으니 '스님이 딱이다!' 싶었을 겁니다.
"제게 큰스님 한 분 소개해 주시면, 절에 들어가 열심히 빨래도 하고 가르침도 받겠습니다."당시 절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불교에 몰입해 있던 사촌 누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누님은 "네가 가진 것 다 버려라. 부모님, 형제도 다 버렸다고 생각할 때 다시 연락해라"라고 답했습니다.
갈등이 컸습니다. 모든 걸 다 버려야 한다는 말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기도 했습니다. 방황을 거듭한 끝에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고, 운 좋게 합격해 강원도 어느 탄광촌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개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내가 공무원 발령을 받은 해, 나와 아무 상의도 없이 형님이 출가를 했습니다! 당신 주머니 탈탈 턴 돈을 가난한 집 안방에 몰래 놓고 죄인처럼 도망치는, 그런 진짜 스님 말입니다.
"삼형제 중 한 명이 스님 된다. 그리고 넌 40대 후반 전엔 차 운전하지 마라."어렸을 때 들었던 보살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젠 "운전하지 마라"던 그 '예언'만 남은 셈입니다. 저는 '면허증 따면 운전대를 잡을 거고, 그러면 큰 일 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그 추운 명절 때 버스 세 번 갈아타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형님이 계신 산속 암자까지 갔습니다.
45살이 되어서야 운전 면허증을 땄고, 이듬해 운전을 했으니 보살님의 '말씀'을 지킨 겁니다. 돌이켜보면, 꼭 보살님의 말씀 때문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 비린내 나는 고등어를 머리에 이고 길을 떠난 어머님은 한 달이 지나서야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자식들 굶기지 않겠다는 처절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커서도 차 같은 사치품(?)을 쉽게 사지 못했습니다.
보살님은 7살인 내게 나무로 불을 때 밥 하는 법과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친구처럼 살갑게 대해주시다가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어머님보다 더 엄하게 야단도 치셨습니다. 당신은 제대로 못 드셔도 우리 삼형제를 위해 따뜻한 아랫목에 밥을 보관해 두시던 보살님. 그 아련하고 값진 마음을 오랜 시간 간직하고 싶습니다.
개고기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군에서 안 먹겠다고 버티니 고참은 "너 개개는 거냐?"며 팬티가 엉덩이에 달라붙도록 '빠따'를 때렸습니다. 그래도 먹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들은 "개고기 절대 먹지 마라"는 보살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주인을 보면 반가움을 표현할 줄 아는 인간과 밀접한 동물이기에 그런 당부를 하신 듯합니다. 어쨌든 저는 보살님의 당부를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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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전에 운전하면 죽는다" 귀신 같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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