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성훈
장인엔터테인먼트
박성훈은 쉽사리 규정하기 어려운 배우다. 쭉 뻗은 훤칠한 체격에 조막만한 얼굴, 그 위로 자리 잡은 이목구비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금세 다른 안면이 비친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굵직한 목소리엔 남자다움이 배어 있다. 언뜻언뜻 소년 같은 내적인 성향이 스치기도 한다. '어느 것이 그의 진짜 얼굴인가'를 더듬다 종래엔 '이 모든 것이 박성훈의 얼굴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의 껄렁한 우등생 '락우드', 연극 <모범생들>의 상위 0.1% 엘리트 '민영' 등 이제껏 박성훈이 입었던 역할들이 너무나 '그'처럼 보였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박성훈은 지난 6개월간 바쁜 나날을 보냈다. MBC드라마 <잘났어 정말'> 연극 <모범생들>을 오가며 활동한 분주한 시간이었다. 현재는 짧게 주어진 휴식 기간을 즐기며 차기작 준비에 한창이다. 달콤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와 함께 연기와 게스트로 출연을 앞둔 연극 <올모스트 메인>에 대해 지난 24일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 "많이 배운다"박성훈은 11월 개봉을 앞둔 연극 <올모스트 메인>에 출연한다. <올모스트 메인>은 총 여덟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연극으로 미국 인기 TV시리즈 <로 앤 오더>로 잘 알려진 배우 '존 카리아니'가 작가로 참여한 작품이다. 2006년 초연한 뒤 전 세계에서 공연돼 왔다. 이번 공연은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의 1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로 우상욱, 진선규, 홍우진, 김지현, 정선아 등 소속 배우들과 임기홍, 노진원, 김늘메, 김대현, 박성훈, 김남호, 이동하, 윤나무 등 14명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게스트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그가 연극 <올모스트 메인>의 게스트로 참여한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박성훈은 이번 공연에 참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간다' 안혁원 PD님이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죠. 지금 있는 회사에 진선규, 이희준 형님이 계신데 '간다'는 두 분과 인연이 큰 곳이에요.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간다'는 수려한 작품과 뛰어난 연출, 연기력을 자랑하는 집단이잖아요.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에요. 연습하는 걸 보면 정말 잘하시거든요. 어제도 런스루를 봤는데 정말 자연스러워서 이 대사가 대본인지, 애드리브인지 모를 정도예요. 많이 배우고 있어요." 박성훈은 윤나무와 함께 다섯 번째 에피소드 'They Fell I Randy'에 출연한다. 그는 그동안 주로 맡아왔던 도회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순박한 시골 청년으로 변신을 시도할 예정이다. 그는 "미스 캐스팅일까 겁난다"면서도 "PD님께서 그래서 더 재밌을 거라고 해주시더라고요.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함께 캐스팅된 윤나무는 전작 <모범생들>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 근래에는 일주일에 5일을 만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는 "같이 공연도 보러 다니고, 이야기도 많이 해요. 생일도 몇 달 차이 안 나서 호칭만 형이지 친구처럼 지내요. 나무는 연기도 잘하고, 마인드도 정말 좋은 친구예요"라며 파트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녹여낸 작품이다.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만큼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옴니버스로 이어지는 작품이라 다채로운 매력이 있어요. 잘 차려진 밥상 같죠. 지금까지 좋은 작품을 해왔지만,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웃음) 연말연시에도 잘 어울리고, 작위적인 느낌도 없어요. 아마 편안한 마음으로 보실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연기를 하는 이유? "무대 맛을 봤죠"박성훈은 의대, 법대 등 학력이 높은 집안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한 연기 전공자다. 자칭 집안의 '돌연변이'다. 학창시절을 묻자 "판도라를 상자를 열지 말라"며 장난스럽게 고개를 젓는다. 그의 학창시절은 '놀 만큼 놀아봤어'라는 유행가 가사로 축약되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만은 꽤 깊었다.
"공부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장시간 고민했죠. 그러다 막연하게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무대 맛'을 봤죠.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어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아직까지 무대에 계속 서는 것 같아요."그가 말하는 '무대 맛'은 무엇일까. 박성훈은 관객이 자신을 향해 웃고 울고 박수치는 모든 것들이라 설명했다. '무대 맛'은 아득하게 '연기를 해야지' 생각했던 그에게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연극 <십이야>로 워크숍을 한 적 있어요. 최종 리허설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소대에 퇴장해서 정말 꺼이꺼이 울었어요. 그때 진정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어떤 마음인지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유서 읽는 장면을 연기했는데 객석에 앉아 계신 아버지가 눈물짓고 계시더라고요. 기분이 정말 묘했어요. 규정지을 수 없는 느낌인데,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는 없었냐고 묻자 "오히려 응원해주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외라고 반문하자 "제가 집안의 골칫덩이였죠.(웃음) 아들이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것에 기뻐해 주셨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부모님은 지금도 응원을 많이 해주세요. 아버지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셨는데 다른 길로 틀어진 경험이 있으시거든요. 그것에 대한 회의감이 늘 자리하고 있으셨나 봐요. '훈아, 너는 이 길을 선택했으니 꾸준히 밀고 나가라'고 하셨어요. 정말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