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권 권력은 서부경남으로 통한다?

서부경남 출신도 불편하다

등록 2013.10.29 09:32수정 2013.10.29 09:32
0
원고료로 응원
"너 고향이 어디야?"
"예 00입니다!"
"와 우리 고향과 가깝네. 너희들 앞으로 신병 힘들게 하자마."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군생활을 했던 1987년 당시 자대를 배치를 받으면 처음 듣고, 했던 질문이 고향이 어디냐였다. 선임병 고향이 같다면 '금상첨화'다. 군대만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우리 사회는 고향을 묻는 경우가 많다. 학연과 지연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자격과 능력과 조건이면 고향이 같은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지연은 좋은 영향보다는 악영향을 더 많이 끼쳤다. 특히 대통령이 특정 지역 출신을 고위공직자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인 경북 포항과 영일 출신자들을 고위공직자에 임명해 '영포라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조금 더 넓혀 'TK정권'(대구·경북)으로 불렸다.

그 피해는 심각하다. 국정원 불법선거가 워낙 큰 이슈라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원전비리 관련자들이 대부분 영포라인이다. 그 중 한 사람이 MB정권에서 '왕차관'으로 이름을 날린 박영준 전 기획재정부 차관이다.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이 능력과 도덕성에 바탕한 인사를 공정하게 했다면, 고위공직자 비리는 많이 나아졌을 것이다. 후임자들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인사탕평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한 이유도 여기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출마 선언 이후 국민 대통합을 강조해 왔는데 그 핵심이 인사탕평"이라며 "대통령이 된다면 지역이나 출신을 다 뛰어넘어 일을 제일 잘할 수 있는 인물을 뽑으려고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호남정권이니 영남정권이니 하는 말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박근혜 새누리 후보 인터뷰] "집권하면 탕평인사 영·호남정권이란 말 사라지게 하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인사탕평을 천명한 지 1년이 다 된 지금, 박 대통령 주위에 있는 고위공직자들 면면을 보면 인사탕평은 애초 박 대통령 '수첩'에 없었다.

정홍원 국무총리(경남 하동).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경남 거제), 홍경식 민정수석(경남 마산), 김정석 서울지방경찰청장(경남 고성), 서천호 국정원 2차장(경남 남해),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경남 사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경남 마산)


이들 공통점을 무엇일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고향이 경남이라는 점이다. 특히 서부경남임을 알 수 있다. 서부경남만 아니라  부산으로 더 넓히면 박흥렬 경호실장(부산), 양승태 대법원장(부산),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부산)으로 이어진다. 물론 양승태 대법원장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것이 유일한 위안 거리다.

민주당이 '신PK시대'가 도래했다고 비판한 이유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전에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당선 직후에는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지역과 성별, 세대를 넘어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겠다'며 대탕평 대통합을 재천명한 바 있다"고 박 대통령 약속을 상기시킨 후, "사정·감사 라인은 PK(부산·경남)출신이 독식해 신 PK시대가 도래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를 찍은 사람들을 "반(反)대한민국 세력",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으로 매도한 윤창중을 청와대 대변인에 앉힐 때부터 인사탕평을 통한 '국민대통합'은 물건너갔다. 무엇보다 '인사참사'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인사는 박 대통령이 가장 비판받았다. 낙마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등 '낙마축구팀' 면면을 보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수첩인사가 낳은 참사 정점이었다.

인사참사 비판를 벗어나는 길은 인사탕평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다시 박 대통령은 1992년 12월 13대 대통령선거 '부산초원복집 사건' 주역이자, '유신시대' 부활을 알리는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앉혔다. 김기춘 실장 체제 이후 '채동욱 낙마', 윤석열 팀장은 국정원 부정선거 수사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김진태 전 대검차장이 검찰총장에 내정됐다. 김 내정자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법무장관 때인 1991년 법무부 심의관실 파견 검사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김 내정자는 고향이 경남 사천이고, 김 비서실장은 경남 거제다. 두 지역은 차로 1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하동이다. 역시 지척이다. 또 정 총리와 김 비서실장은 고향만 가까운 것이 아니라 김 비서실장이 정 총리 부산 경남고 선배다. 지연과 학연이 얽히고 얽힌 것이다. <경향신문>은 "김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 총리를 추천한 데 이어 이번에는 김진태 내정자 발탁에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PK와 서부경남 출신을 고위공직자에 임명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국무총리-대통령비서실장-검찰총장 등 사정라인이 같은 지역 또는 같은 학교 출신에 편중됐다는 것이다. 필자는 경남 사천이 고향이고, 사는 곳도 경남 진주다. 주위 분위기는 오래만에 우리 지역 출신이 권력 핵심부에 들어갔다고 좋아한다.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때문이다. 중부경남인 창원, 동부경남인 김해에 비해 발전이 한창 뒤떨어졌는 데 국무총리-대통령비서실장-검찰총장까지 우리 지역 출신이니 어깨에 힘을 줄 만하다.

하지만 반갑지 않고, 환영할 마음도 없다. 헌법이란 이름 조차 붙이기 힘든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하고, "우리가 남이가" 주역을 비서실장에 앉혔다. 박근혜정권은 민주주의만 위기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사탕평마져 팽개쳤다. 권력은 서부경남으로 '통'(通)하는 박근혜정권, 그 앞날이 위태롭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인사탕평 #서부경남 #신PK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3. 3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4. 4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5. 5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