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경북도당 앞 기자회견을 하며

[주장]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등록 2013.10.28 19:44수정 2013.10.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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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참석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제가 가지 않더라도 기자회견은 진행될 것이며 그것이 객관적 시각을 가진 언론사에 의해 보도되어 국민들의 눈에 들어갈 것입니다. 오늘(10월 28일)은 대구 기자회견 말고 세 곳의 약속이 더 잡혀 있었습니다. 어젯밤에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수의 땅에서 어렵게 추진되는 시국선언 자리에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반복해서 뇌리를 때렸습니다. 전체를 위한 길을 현미경으로 좁혀 보면 바로 나를 위한 길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어제 저녁에 김천농민회 이상혁 회장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국정원 해체, 민주주의 회복 경북지역 제 시민사회단체 시국선언'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기자회견장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천역 노조 이 위원장에게 전화를 하니 선약이 있어 그는 가기 어렵겠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와이셔츠를 데리고 나름대로 정장으로 저를 치장했습니다. 아내로부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듣고 집을 나서는 제가 마치 학교 입학식에 처음 참석하는 초등학생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전 9시 정각에 김천역에서 이상혁 회장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 회장의 부인은 몸이 좋지 않아 대구 가는 길에 병원엘 들려야겠다고 했습니다. 자주 타는 기차지만 보통 때와는 좀 달랐습니다. 무슨 큰일을 도모하러 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들떴습니다. 마치 만주 벌판에서 일제와 맞서 독립투쟁을 하러 떠나는 사람에 비유한다면 연목구어식의 비약이 될까요? 어쨌든 그것 비슷한 비장감이 저를 감쌌습니다. 세태가 자기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나'와 가족 외에 이웃도 생각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하는 마음은 아직도 고귀하고 필요한 마음이라고 확신합니다.

동대구역에 내려 택시를 탔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10시 35분, 벌써 몇 사람이 나와서 새누리당 경북도당 앞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을 위하는 위정자의 수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구는 그저 돌아가는 것만 같아 신기했습니다. 누가 통치하든 햇볕 아래 돌아가는 세상은 비슷하기만 한 것이 신비롭기조차 합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기자회견장에 모여 들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던 장이 아니어서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십년지기나 되는 것처럼 반갑게 인사들을 나누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형제자매와 같다는 동류의식을 갖고서 말입니다.

승합차에서 엠프를 내리고 마이크 시험을 했습니다. 왕왕~ 들리는 소리가 평상시 같았으면 소음으로 들렸을 법한데,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낼 기기라고 생각하니 그런대로 달콤하게 흡수되었습니다. 전농 경북도연맹 최창훈 사무처장이 기자회견 사회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민중의례를 하고 운동권의 영원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씩씩하게 불렀습니다. 가사 하나 하나가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가상했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주관해서 준비한 전농 경북도연맹 최상은 의장이 개회사를 했습니다. 그는 세상 흐름을 역행하는 박근혜 정부에 제 민주사회단체들이 굳건히 연대해 싸울 때 반드시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회자가 제게 현 시국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규탄의 말을 부탁해 온 것입니다. 저는 다른 것은 차치하고 박근혜 정부의 독재적 권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정희는 유신 쿠데타로 장기 독재를 하면서 총칼로 국민을 탄압했지만 그의 딸 박근혜는 국가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농단하며 국민을 탄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국정원 경찰 등 공권력을 선거에 이용하고, 그것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검찰 수장을 제거하고 자기 사람을 심는가 하면, 군까지 상대방 후보를 폄하하는 사이버 작업에 이용한 것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의 행동이니만큼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민주노총 경북도본부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함으로써 오히려 전교조의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희망적인 말과 철도의 민영화 등으로 국민들께 부담을 더 주려고 하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 파기를 맹비난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자기 한 몸 건사하려는 사람들은 이런 공공 투쟁의 장소로 발길을 옮겨놓지 못할 것입니다. 국민 전체의 일이 바로 나의 일이라는 믿음을 갖고 이 회견장에 나온 사람들이라고 여기니 그렇게 가깝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전여농 경북도연맹의 한 여성 활동가가 시국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고운 목소리에 얹혀 있는 내용은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쇠락을 막아 보자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기자회견을 마쳤습니다. 기자회견 중, 한 연로한 여성 노인이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잘 하고 있는데 괜히 시비를 걸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영남 지역의 정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는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총으로 여의고 고아로 자라다시피 해서 대통령이 되었으니 가엾은 마음은 좀 사라졌다며 적극 지지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이런 저급한 연민의 차원에서 바라본 결과 박근혜의 당선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뒤에 있는 한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20여 명이 함께 한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북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회단체 대표 및 실무자들이었습니다. 저와 인사를 나눈 단체는 전농 경북도연명, 가농 안동교구 연합, 고령군농민회, 전국 여농 등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렵게 모여 시국선언까지 했으니 '연대회의' 정도의 모임을 지속해서 가지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국가 권력을 휘둘러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상황 하에서 연대모임을 계속 갖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몇 개 파기하고 참석한 '경북지역 제 시민사회단체 시국선언' 기자회견에 다녀오는 길이지만 기분이 아주 상쾌했습니다. 김천역에 내려 철도노조 김천역지부 이 위원장에게 전개된 상황을 얘기하고 공무원노조 김천지부 이 지부장을 만나 다음 11월 5일에 예정되어 있는 '김천 민주시민·단체협의회' 준비모임에 참석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이 지부장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대답을 해왔습니다. 마침 곧 공무원노조 김천시지부 실행위원회 회의가 잡혀 있으니 그 때 안건으로 올려 토론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만에 하나 부정적 의견이 다수면 개인 자격으로라도 참석하겠다고 의지를 보였습니다. 

불의한 권력이 국민을 겁박하면 할수록 힘없는 국민은 더 뭉쳐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 행사되는 국가 권력에 과감하게 맞서야 합니다. 12년간 합법노조로 공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전교조를 규정에도 없는 '해고자는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사조문(死條文)을 들먹이며 법외노조로 내 몬 것은 역사를 되돌려 독재자 아버지의 유신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엄포밖에 안 됩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국민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간다면 그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가 국민의 아픈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현명한 대통령의 자세라는 것을 충고합니다.  
#경북지역 제 시민사회단체 #시국선언 #국정원 규탄 #민주주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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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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