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동지이자 최대 정적이었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을 때 카이사르를 국가 반란자로 규정하고 그와 맞섰으나 결국 그리스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에게 패했다. 이집트로 도주해 그곳에서 권토중래하고자 하였으나 도착 즉시 살해되었다. 사진은 코펜하겐 칼스버그 미술관에 있는 그의 흉상,
박찬운
내전에서 승리한 다음 카이사르는 이른 시간 내에 여러 가지 변혁 조치를 취한다. 원로원을 개편하여(의석수를 600석에서 900석으로 늘림) 속주화된 제국의 사람들도 로마의 원로원 의원으로 받아들여 제국의 결속을 다졌다. 대규모 건축사업을 벌여 로마를 제국의 수도답게 전면적인 도시계획을 단행한다. 살아생전에 율리우스 공회당, 율리우스 포럼을 건설했고, 침체한 경제를 살리기 위한 각종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단행한다. 이에 시민들은 환호한다.
뿐만인가, 카이사르는 달력을 개혁해 로마인을 넘어 지난 2천년 동안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정확한 역법을 선물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365일 양력 체계는 카이사르가 단행한 율리우스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16세기 그레고리우스 13세 교황에 의해 소소한 수정이 가해졌지만 그 원형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그가 암살되었다. 왜일까? 민중으로부터 그리도 칭송 받고 그것을 토대로 절대권력을 행사해 가던 그가 왜 갑자기 자신이 사면한 반대파(카이사르를 암살한 카시우스와 부르투스는 모두 폼페이우스파로 내전 중에 적대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내전이 끝나고 이들을 모두 사면하고 원로원 의원으로 복귀하는 것을 허용한다)로부터 칼침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암살로 막을 내린 영웅의 최후... 황제정의 역사를 막지 못해카이사르의 암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로마 공화정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로마는 기원 전 753년 나라를 세운 다음 약 200년 동안 왕정을 경험하고 기원전 6세기에 들어서 공화정으로 정체를 바꾼다. 더 이상 1인 군주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화정을 500년간 유지해 왔다.
로마 공화정의 본질은 한 마디로 말하면 권력분립이다. 로마의 평상시 정치권력은 집정관(콘술)을 중심으로 행정권과 이를 견제하는 원로원의 권력으로 양분되어 행사되었다. 특히 원로원은 돈줄을 완전히 쥐고 있었다. 로마 공화정에서 재정권은 원로원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로원은 로마 정치에서 그 자체로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평민회라는 존재가 더해진다. 평민들은 평민회(이것은 단일한 기구가 아니었다. 구역별 평민회인 쿠리아 민회, 로마군단 중심의 켄투리아 민회와 부족별 평민회인 트리부스 민회가 있었다)를 통해 집정관을 포함한 정무관(켄투리아 민회 선출)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호민관(트리부스 민회 선출)을 뽑았다. 호민관은 집정관이나 원로원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호민관은 이들 권력이 결정한 법령 등에 대하여 그것이 평민들의 이익을 저해한다고 판단하면 거부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에 500년 간 이런 권력분립형 공화정을 유지해 왔다. 그런 이유로 로마인들에게는 어느 한 사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해 왔고 그런 시도를 여지없이 거부해 왔다. 그들에겐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왕이라는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카이사르가 내전을 일으킨 다음 그 전쟁에서 최종 승리자가 되자 로마의 모든 권력이 그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년 기한의 독재관이 되더니만 그가 죽는 해(기원전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그는 집정관으로서 법률을 발의하고 집행했으며 감찰관으로서 원로원의 의원을 임명하거나 면직시킬 수 있었다. 원로원은 이제 완전히 그의 통제권으로 들어와 꼭두각시에 불과한 국가기관이 되었다.
물론 카이사르에게도 변명은 있다. 카이사르가 이런 새로운 정체를 만든 것은 로마제국의 내일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이다. 당시 로마의 공화정은 부정부패로 병들었고, 수없는 정변이 일어나 드넓은 제국을 통치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공화파는 로마제국의 속주를 단지 로마의 식민지로만 인식하고 그에 맞게 지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카이사르는 속주의 로마화를 통해 지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에겐 로마제국 어디라도 로마와 다르지 않은 또 다른 로마이길 바랐다. 그는 로마 공화정을 완전히 해체하지 않으면 로마제국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니 두 세력은 필연적으로 충돌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