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원 고가익산 원불교 교당
김수종
건립 당시에는 안채·사랑채·행랑채·문간채·곳간채 등 여러 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입식 부엌이 들어선 뒤쪽 공간 외에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외부인을 위해 한옥민박을 하고 있어 누구나 방문해 숙박이 가능하다.
사랑채는 주인이 관리하는 것이 힘들었던지 지난 1959년에 원불교가 내부를 완전히 개조해 교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숙박을 하고 원불교 교당으로 쓰고 있어 외부인이 편하게 둘러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는 사이에 내담을 두고 복도를 설치하여 통행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배원의 부친(이석순)이 누룩사업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만석꾼으로 성장하였고, 또한 삼성 농장을 운영하는 한편 전북축산의 대주주였으며, 황등산업의 이사를 역임했다.
그의 장자인 이집천은 교육사업가이자 서예가로 명망이 높았으며, 다른 삼부자의 집과 마찬가지로 만석꾼이면서 자선사업을 펼쳐 주변에 평판이 좋은 집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무튼 현재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가 보존되어 있고 사람이 살면서 한옥민박을 하고 있고, 원불교 교당으로 쓰이고 있어 아쉽지만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이 보기에는 좋았다.
이어 언제나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전혀 볼 수 없는 '김안균 가옥(金晏均家屋)'이다. 1986년 전북 민속자료 제23호로 지정되었다. 안채와 사랑채는 1922년에, 동·서 행랑채는 1930년대에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 전통적인 상류가옥의 변모를 보여주며 조선 말기 양반가옥 형식을 기본으로 구조와 의장에 일본식 수법이 가미되었다.
서양식을 본떠 거실과 침실을 구별하였고, 사랑채와 안채 앞뒤로 복도를 두르고 유리문을 달아 채광을 조절하였다. 사랑채 옆에는 세면대가 딸린 화장실을, 행랑채 끝에는 목욕탕을 배치하였다. 대청은 누마루 형식으로 정교한 아자(亞字) 난간을 둘렀으며, 주춧돌은 정교하게 잘라낸 희고 매끄러운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행랑채 끝에 정문이 있고, 곳간은 정면에 기둥을 세워 지붕을 연결한 포치 형식으로 바닥에 시멘트를 발라서 통로로 이용하였다. 뒤쪽 집들을 사들여 점차 넓힌 탓에 넓은 대지에 비해 건물이 앞쪽으로 몰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