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초등 선생님들이 집회 관련 사전 퍼포먼스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정은균
김,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아래에서는 '선생님'으로 하겠네. 김 선생님은 지금 '위원장'이라는 호칭만으로도 커다란 무게감에 힘겨워하실 게야)을 잘 알고 있겠지. 우리 언젠가도 집회에서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 않은가. 그 김 선생님이 긴 시간 동안 정부의 법외노조화 협박에 항의하는 단식을 했다네. 그리고 어제, 언론 보도에 나온 김 선생님 모습을 인터넷으로 보았어.
김 선생님은 평소에도 '후덕한' 얼굴은 아니었지 않은가. 오히려 늘 여윈 모습이지. 그래서 그랬을까. 어제는, 그렇지 않아도 퀭한 얼굴이 더욱 안쓰럽게 다가오더군. 힘든 단식으로 홀쭉해진 김 선생님의 모습이 참 가슴 아팠어. 김 선생님은, 그리고 많은 전교조 선생님은 지금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 해직도 불사하겠다고 말하고 있네. 감옥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그러니 어찌 목이 메이지 않았겠나. 그래 어젯밤 김 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네.
그런데 자네 아는가. 백척간두에 선 전교조의 선장인 그 김 선생님이 시를 쓰신다네. 전공 교과목은 지구과학이야. 자연과학도인 셈이지. 그러니 김 선생님의 시 쓰기는 일종의 '외도'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어제, 6만의 교사가 가입해 있는 전교조의 위원장이 직접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한 선생님으로부터 듣고 얼마나 기꺼웠는지 모른다네. 내가 국어 선생이어서, 시를 좋아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네. 시를 쓰는, 대단히 '정치적인' 교원노조의 위원장이라니 이 가공할 대한민국의 지형에서 얼마나 희귀하고 신선한 사례인가 말일세.
예나 지금이나 시를 쓰는 마음과 노력을 폄훼하는 자들이 있네. 고백하자면, 철없는 한때 나도 그랬었지. 이 거대한 세상을 시 따위로 어떻게 바꾸겠단 말인가. 시나 나불거리는 시인 무리가 이 세상을 바꾸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겠나. 이런 생각으로 말이야.
하지만 진짜 시는 힘이 세다네. 진짜 시인은 결코 한가한 풍류객이 아니네. 그런 시 한 편은, 옷을 적시는 실가랑비처럼, 기어이 바위를 뚫고 마는 한 방울의 낙숫물처럼, 거대한 바다로 흘러드는 풀잎의 조그만 이슬처럼, '힘'이 없으나 결코 '힘'이 없지 않네. 그런 시인 한 명이 수백만의 가슴을 뜨거운 잉걸로 만드네. 그런 시를 쓰는 위원장을 두었으니 전교조는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가.
그래 하는 말일세. 이제 다시 우리 전교조의 품으로 돌아오게나. 사실은 오늘 이 한 마디를 조심스레 꺼내려고 이토록 긴 길을 돌아왔다네. 자네가 전교조를 떠나간 이유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묻지 않겠네. 뜻이 있어 떠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꼭 다시 돌아오라고 간절히 말하고 싶네. 진심으로 부탁하는 말일세.
자네는 어제 내게 '기운 내'라는 짧은 위로의 문자를 전해 주었지. 하지만 솔직히 그 3음절의 말로는 지금도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네. 자네가 돌아와야 하네. 자네가 한때 몸 담았던, 그러다가 이런저런 말 못할 사정으로 떠나간 그 전교조로 돌아와야 하네. 돌아와 위기에 빠진 전교조에 힘을 보태 주어야 하네.
역설적이지만 마침 기회와 여건도 좋다네. 행정실이며 학교 관리자 눈치를 보지 않고 자동이체로 조합비를 내면 되니까 말일세. 사실 '이런저런 말 못할 사정' 안에 교장이나 교감과 같은 학교 관리자의 보이지 않는 견제와 불이익이 얼마나 많은가. 이번 기회에 그런 눈치 보지 말고 조합에 가입해 민주주의적인 교원노조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세나.
전교조가 전능의 조직이 아님을 잘 알고 있네. 보수언론이 부풀린 것이긴 하지만 해묵은 정파 갈등도 없지 않네. 하지만 세상 어떤 조직이 완벽하고, 무정파의 일사불란함을 과시하겠는가. '검사동일체'라는 웃기지도 않은 원칙을 들먹이며 한 몸을 강조하는 검찰도 요새 시끌시끌하지 않은가.
민주주의 갈망하는 시민이 전교조에 힘 보태야 하는 이유 기실 건강한 조직이란 게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한쪽에서 찬성하면 다른 쪽에선 반대하고, 그리하여 치열하게 토론하여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일세. 새가 두 날개로 날 듯이 세상도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나란히 가야 건강해짐을 믿네. 전교조가 이 나라 교육에서 그 날개의 한쪽 노릇을 하고 있음을 믿네. 그것이 자네가 전교조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수많은 시민이 전교조에 힘을 보태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사협의회(1987년 9월 27일 결성)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출범했네. 같은 해 7월 1일, 당시 문교부는 '교사의 노조 결성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전교조 소속 교사 1527명을 파면·해임했지. 전교조의 비극적인 출발이었네.
하지만 그뒤 법정 소송을 통해 해직교사 1329명이 1994년 3월 자로 복직했어. 그래도 전교조를 향한 권력의 핍박은 그치지 않았지. 이명박 정권 때 40여 명 가까운 전교조 교사들이 파면과 해임, 정직 등의 중징계를 당한 사실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선생님들 모두 무효 판결을 받고 속속 교단으로 돌아오고 있네. 바로 이것이 역사의 정의고 진보하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일세. 그 정의와 민주주의의 길에, 떨리고 두렵겠지만 자네가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네.
2013년 10월 24일, 빛나는 가을 아침에, 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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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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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도 불사하겠다는 '용감한' 전교조, 그래도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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