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작년 5월 지리산 둘레길 개통 즈음 아이들과 조를 나눠 2주간에 걸쳐 둘레길을 완주했다.
이진순
도시에서의 나의 소비 수준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계속 돈을 써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도시생활 자체가 나를 지치게 했다. 나의 소비생활이 자연과 타인들에 대한 무수한 '폐끼침'의 결과로 가능해진 것이라는 사실이 항상 가슴 속 체기로 남아있었다. 소비의 유혹이 처음에는 신기한 매력이었다면, 점점 피로와 권태의 대상이 되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당시 나를 면접했던 학교대표 샘(선생님)이 첫 6개월간 월급이 50만 원, 그 이후엔 70만 원인데,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주저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안 쓰고 살면 되지 뭐~ 이런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이런 나의 용기가 실현될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처음 한 달은 가계부를 써봤다. 집값이 들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고, 학교와 집을 오가며 살았더니 한 달 생활비가 10만 원 조금 더 들었다.
그렇다고 인간 이하의 삶(?)은 절대 아니었다. 소비 수준이 극단적으로 낮은데, 결핍감이 느껴지지 않았달까? 물론 지금은 여기저기 사회생활(?)도 하는 등등의 이유로 소비 수준이 많이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소비가 내 삶의 기반이란 느낌으로 살아가진 않는다. 그리고, 소비의 많은 부분이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기도 하고, 생산자의 정성과 제품의 질에 대한 믿음으로 소비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아직까지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는 나는 꽤 많은 농산물들을 그저 고맙게 얻어먹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소비량은 낮아졌지만, 소비의 질은 월등히 높아졌다고 자부한다.
내가 꿈꾸는 건강한 연령분포도
언제부턴가 내 삶의 키워드라 할 만한 것 중 하나가 '자연스러움'이 되었다. 인위적, 인공적인 것들의 오만함에 대한 반발감이 그 시작이었으리라. 내가 회복하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움의 구체적인 내용은 뭘까에 대해 아직까지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은 3~4세대가 함께 살아가던 옛 가족들의 삶의 모습이다.
작은학교의 역사가 10년이 되어가던 2010년 즈음부터 작은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 다양한 이유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또 지난해부터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 와중에 교사들 중 누군가가 "나이 많고 오래된 교사들이 이젠 물러나야 되나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알바니 프리스쿨의 창립자이자 30여 년 이상 그 학교에 몸담고 있는 <프리스쿨>의 저자 크리스를 떠올렸다. 그의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깊은 성찰과 따스함을 한껏 느끼며 행복했고,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늙음이라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젊음의 긍정적 이미지에 밀려 부정적인 것이 되어 버렸고, 그래서 서둘러 폐기되는 것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작은학교 교사회는 현재 13명의 30~40대 상근교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나이든 70대의 교사부터 20~30대의 젊은 교사가 함께 하는 미래의 작은학교를 꿈꾼다.
그럴 수 있으려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이곳에서의 삶 속에서 하루하루 깊은 성찰을 하면서 살아가는 교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작은학교라는 공간이 당장의 효율에 갇히지 않고 세월 속에 녹아난 깊은 지혜와 넉넉함에 대해 진실된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명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