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모습
정덕수
외롭게 독하나 있는 뒤뜰보다는 옹기종기 항아리며 작은 오지가 놓여있는 풍경. 얼마나 흐뭇한 고향의 정취인가. 여름 한낮, 뜨거운 햇살 아래 뚜껑을 열어놓은 장독대의 된장독이며 간장, 고추장독을 보면 '넉넉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다시금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의 잊고 지내던 고향과 어머니의 인자하시기 그지 없으던 행주치마며, 티 없이 맑고 철모르던 유년이 사무치기도 하거니와 넉넉한 마음 바탕을 지니기를 가르치지 않던가. 스스로 이같이 무엇인가를 넉넉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혹 무겁게 닫혀있는 독으로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리라 생각되어 지는 시간이다.
그러한 장독대에 봉숭아와 채송화, 수국이나 비비추, 과꽃 같은 우리의 향수어린 꽃들이나 고즈넉하니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가려진 돌담장은 없어도 말이다.
흙으로 돌아가는 그릇황토(黃土)에다 참나무 등 활엽수의 잎이 썩어 만들어지는 부엽토를 기본으로 한 옹기를 빚을 흙으로 형태를 빚고, 재를 물에 풀어 만든 잿물을 입혀 뜨거운 인고의 불 속에서 구워내는 옹기.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살펴보았을 때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 바로 이 옹기다. 그러하기에 사람의 몸에도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그릇이 아니겠는가.
옹기 그릇은 잘만 사용하면 백 년 이상 쓸 수 있다. 정겹게 사용하던 그릇이 금이 가고 깨졌다 할지라도 그릇의 성분 자체가 자연의 것이었기에 본시 왔던 흙으로 돌아가는 천성적 성품을 지닌 군자와 같다.
유약을 입힌 자기는 수백 년 이상, 심지어 천 년 이상의 시간을 거슬러서도 땅 속에서 부서진 조각으로도 발견되는 것과는 달리, 이 순박하고 천성적으로 천품(天品)의 성품을 지닌 옹기는 그 조각이 거의 발견되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겠다. 바로 자연에서 취한 자연의 형태를 닮은 그릇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모습은 어찌 보면 사람의 육신과 같은 모습이 아니겠는가. 나서 자라고 삶을 영위하다 늙어 생명이 다 하여 땅으로 돌아갔을 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금 무위자연 흙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품성 말이다. 흙에서 생명을 얻어 옹기로서의 본분을 다 하고 그릇으로서의 생을 마감하였을 때, 다시금 흙으로 돌아갈 줄 아는 모습은 너무도 깊은 연관이 있고 닮았다 아니 할 수 없다.
이렇듯 옹기는 지닌 품성이 자연 그 자체이기에 음식의 맛을 고스란히 지키고 보존하여주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더하여 그 항아리를 닦고 어루만져주는 우리의 어머니와 누이, 사랑스런 아내가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아니 되겠다. 소중한 그 분들의 정성 덕에 장맛이나 음식의 깊고 풍부한 맛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하여 세상에서 지치고 병든 내 육신을 강건케 하니 이 얼마나 복되고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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