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지젤'의 한 장면 연기하는 이은원
국립발레단
이은원에게 '지젤'이란? "특별한 작품"
<지젤>은 이은원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의 정단원이 된 후 처음 주역을 맡은 작품이었고, 이 작품을 통해 무용수 이은원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2011년 초연한 <지젤>은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작으로 국내에서 유례없는 전회전석 매진의 사례를 낳은 작품이다. 발레 대중화에 큰 기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은원에게 <지젤>이 특별한 작품일 것 같다고 운을 떼자 "초연 <지젤>은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는 농도 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은원은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선생님이 오셔서 직접 코치를 다 해주셨어요. 제가 또 언제 그런 선생님들에게 코치를 받아보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학생이어서 '전막'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 동작 하나하나 의미를 담아야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지젤'을 통해 굉장히 많이 배웠고, 즐겁게 연습했었어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지젤>은 이은원에게 익숙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가 TV에 방영되는 <지젤>을 녹화해 보여준 일이 있는데 그 역시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 버전이었다는 것이다.
"그게 처음 본 <지젤>이었어요. 나중에야 다른 버전의 <지젤>을 봤죠. 돌이켜 보니 정말 인연이 깊은 작품이네요." 이은원은 <지젤>의 무대에 여러 번 올랐다. 매번 같은 안무를 추지만 느낌은 출 때마다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대마다 '지젤'로서 느끼는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점이다. 몰입을 위해 따로 하는 것이 있느냐 묻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지젤'은 심장병이 있는 아이니까 동작을 할 때도 움츠러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2막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면 귀신처럼 빨리 걸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요"고 말했다.
<지젤>은 수많은 안무 버전이 있다. 키로프, 볼쇼이, 마린스키 등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자신 만의 안무를 쏟아냈다. 여러 버전이 국내에서 공연됐지만,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파트리스 바르' 안무 버전의 <지젤>이다. 국립발레단이 보유하고 있고, 이은원이 혼신을 힘을 다해 추고 있는 그 버전이다.
이은원은 '파트리스 바르' 버전의 매력에 대해 "드라마 연결 구도가 굉장히 잘 흘러가는 거 같아요"라며 "다른 '지젤'은 이야기 속에서 춤이 딱딱 나오는데, 파트리스 선생님 안무는 동작 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지젤>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이은원에게 어려운 작품이다. 미쳐가는 '지젤'의 감정 연기부터 능숙하게 해내야 하는 섬세한 동작까지 신경 쓰이는 것이 여간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2막에서 '지젤'이 걸어가는 동작이 가장 어려워요. 귀신같이 스윽 걸어가야 하는데, 툭툭하고 걸으면 안 되거든요. 드라마적으로도 감정 표현을 더 해야 하고요. 아는 선생님께서 <백조의 호수>나 <지젤>은 공연을 하면 할수록 눈사람처럼 착착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다 만들고 나면 할머니 된다고. (웃음) 연륜이 쌓일수록 더 느는 작품 아닐까 싶어요.""'알브레히트'는 '지젤'을 배신하지 않았다"'지젤'을 연기하는 이은원의 진가가 발휘된 지점은 '알브레히트'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다. 발레 <지젤>은 시골 처녀 '지젤'의 숭고한 사랑이 담긴 작품이다.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 '지젤'은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죽음에 이른다. 이후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무덤을 찾아오자 무덤 주변의 '윌리'(처녀 귀신)들은 그를 밤새 춤을 추게 하여 죽이려 한다. 그때 '윌리'가 된 '지젤'이 그가 죽지 않도록 돕고 결국엔 그를 살려낸다. 약혼녀가 있음에도 '지젤'을 만난 이력 때문에 '알브레히트'는 흔히 '나쁜 귀족', '방탕한 남자'로 자주 그려지곤 한다.
"저는 '알브레히트'가 '지젤'을 배신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정말 사랑하는데 신분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약혼녀와 만난 거 아닐까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지젤'이 그걸 알고 죽게 되고요. 상황이 맞아떨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2막에서 '알브레히트'는 저(지젤)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 혼자 '나 여기 있어'라는 느낌으로 연기를 하거든요. 처음부터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를 지키려 하는 거죠. 제 해석은 그렇습니다.(웃음)"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물으니 금세 소녀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기라도 하듯 환한 웃음이었다.
"절 가장 설레게 하는 장면은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첫 만남이에요. '알브레히트'가 '지젤' 집 문을 두드리고 숨어요. 그러면 '지젤'이 문을 열고 '누구지? 여기 있나? 없나?'하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거든요. 그 장면은 정말 음악만 들어도 웃음이 나요. 다른 사람들이 그 장면을 연기해도 혼자 웃고 있어요."그렇다면 그녀가 보여주고 싶은 '지젤'은 어떤 모습일까. 이은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백합 같은 지젤'이었다. 그녀는 "제가 나이가 어려서 아무래도 같은 역할을 맡은 언니들보다 연륜이 떨어질 수 있어요. 1막은 제 나이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풋풋함을, 2막에서는 더 애틋한 지젤을 표현하고 싶어요"라고 무대에 대한 당찬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