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 또는 귀문 화반악귀를 쫓는다고 알려진 호문 또는 귀문의 화반, 10개의 화반 중 유일한 호문화반이다.
이재은
강화도에 가면 전등사가 있다. 그 건물의 네 귀에는 추녀라는 부재가 있고 이 추녀 아래에는 발가벗은 여자가 힘겹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유명한 나녀상이 있다. 추녀는 대들보와 함께 한옥에서 가장 무겁고 큰 부재다. 전등사 안내표지판에 소개된 것처럼 도망간 여인을 향한 도편수의 억하심정이 이 추녀 밑의 나녀상을 조각하기에 이르렀는데 여기 남극루에도 어쩌면 비슷한 심정을 표현한 듯 한 하나의 조각품이 있다.
호문(虎紋) 또는 귀문(鬼紋) 모양을 한 화반이 그것인데 정면과 후면에 세 개씩, 측면에 두 개씩, 모두 열 개의 화반이 있다. 사면을 빙 둘러 모든 화반에 이 문양을 조각하지 않고 오직 남쪽 중앙에 위치한 화반만 이 문양으로 돼 있다. 지금껏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없고 나뭇결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무늬를 더해 엊그제 조각해 놓은 양 아직도 선명하다. 100년 전에 소중한 마음으로 제작된 조각품이 이 글로 인해 훼손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전등사에서처럼 모든 면에 문양을 새겨넣지 않고 왜 남쪽 중앙에만 딱 하나를 조각해 넣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남극루의 현판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건물의 명칭을 새긴 현판은 통상 건물 바깥쪽의 중앙에 자리하게 된다. 이 경우는 호문 화반 바로 앞에 현판이 위치하게 되는데 버젓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현판으로 인해 뒤로 숨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