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좌관 하시려고요? '꽃거지' 될 각오 먼저 하세요

[2013국감] 24시간 5분 대기조... 국회 정책보좌진의 '평범한' 일상

등록 2013.10.19 19:30수정 2013.10.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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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질문 모습.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질문 모습.이정민

정확히 1년 전 오늘, 어쩌다 스치는 인연으로 우연히 선택한 국회의원 정책보좌진의 길.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고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마치 특공부대의 훈련을 받듯 첫날부터 매섭게 밀려오는 국회 업무에 정신줄을 놓는 사태가 연일 계속됐습니다.


국회는 정말 초짜라는 배려도 없는 곳입니다. 그 흔한 보좌진 인턴십 과정도 없습니다. '잘 모르겠는데요', '안 배웠는데요'라는 무식도 통하지 않는 메이저리거들의 아귀다툼 그 자체입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야만 합니다. 더욱 저는 작년 첫 날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바로 '국정감사'라는 엄청난 전쟁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요, 암흑천지 그 자체였지요. 며칠 동안 잠도 못자면서 밤샘근무에 쌓인 피로로 얼굴은 이내 파랗게 질려 버렸습니다. 속은 뒤집어지고 몸에선 경련이 나고 식은땀만 주룩 흘러내렸습니다. 왜냐고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도자료, 질의서, 정책자료집, 축사, 지역민원, 특종, 법안 발의, 기사검색, 국회의원 활동 모니터링 그리고 짐꾼 노릇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나에게 주어지는 일은 노총각 40평생 처음 해보는,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무릇 보좌진의 생명은 51%의 체력과 49%의 특종에 대한 기자 촉만 있으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일단 체력적으로 못 버티면 짐 싸들고 나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오자마자 특종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쫓겨나야 하니까요. 정말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오로지 능력과 체력 두 가지로 판가름 나는 보좌진의 역할에 때론 신물까지 나곤 했습니다. 특히 2012년 국정감사 시절의 기억은 소름끼치는 공포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역기 만한 무게의 컴퓨터가 화려한 정보 누드쇼를...

 최신 버전의 국회 다중이 컴퓨터
최신 버전의 국회 다중이 컴퓨터이정민

하지만 꼭 공포만이 도사리고 있는 곳은 아닙니다. 막대한 저장창고를 가지고 있는 최신용 업그레이드 컴퓨터 그리고 국회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함께 쓰는 다중이 기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컴퓨터 무게도 거의 역기 수준입니다. 또 최신 정보가 집약된 신문과 잡지, 국회 정보지들이 시시각각 내 앞에 제공됩니다. 자판 키 하나에 국가기관의 고급정보가 담긴 수천 건의 문서가 내 눈 앞에서 누드쇼를 펼칩니다.


국감 때는 가만히 책상에 앉아만 있는 데도 고위급 공무원들이 90도로 넙죽 인사를 하면서 위선을 표합니다. 또 냉장고 안에는 24시간 알짜배기 음료수가 가득 채워집니다. 특히 홍삼, 인삼과 관련된 정력제와 비타민이 필수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 뿐이랴. 원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형형색색의 사무용품이 저를 유혹합니다. 흡연 장소는 여의도와 샛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테라스, 아주 가끔씩 받는 공공기관의 기념품과 알 수 없는 '머스트해브아이템'이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들지요. 그리고 야식으로 배달되는 족발, 도시락, 피자, 케이크 그리고 기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식도락의 묘미가 가득한 곳도 역시 국회입니다.


밤샘 근무는 기본... 저질체력의 한계를 초월하라

 국정감사 시즌만 되면 넋이 나간 꽃거지 행색은 기본
국정감사 시즌만 되면 넋이 나간 꽃거지 행색은 기본이정민

또 하나의 즐거움이 더 남아있습니다.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와 아름다운 미술 작품 전시회, 유명 영화가 연중 내내 펼쳐집니다. 국회 도서관엔 내가 원하는 수많은 책의 향연이, 그리고 산책과 운동을 겸비할 수 있는 저 넓은 국회 마당과 잔디 공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24시간 경찰들의 행복한 감시를 받으며 마치 대궐에 사는 듯한 아주 소소한 권위의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수면실, 샤워실, 체력단련실 등이 이내 꿈의 파라다이스를 일굽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포인트는, 정책보좌진은 이 모든 것을 즐길 여유와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눈물과 한숨만 나올 뿐이지요. 특히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밤샘 근무는 기본이요, 국감 장소에서의 치열한 총알 전쟁으로 입에 밥알 한 톨 넣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찌됐든 그렇게 해서 소화불량 국감 2주차를 접어들 때면 그대로 녹다운 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주말을 맞아 겨우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다시 2주간의 전쟁을 치르고 그렇게 가지 않던 시계바늘이 국정감사 끝을 향하고 있는 것을 지켜봅니다.

화제를 잠시 돌려 국감장 분위기를 설명하면 참 볼 만한 거리들이 많습니다. 어느 공무원은 국회의원에게 호통을 치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어느 국회의원은 공무원에게 호통을 치며 침소봉대를 합니다. 아니면 뭐 여야 국회의원끼리 헐뜯고 욕하는 일은 다반사죠. 특히 공무원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일이 생기면 그날 국감은 꼭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진행됩니다. 그러면 보좌진들은 그날 꼬박 밤을 지새워야 합니다. 제발 국감 때는 '긁어 부스럼' 말고 '진실게임'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저 바람만 말이죠.

보좌진하시려고요?... 꽃거지 될 각오는 하셔야죠

 국회 후문 앞 윤중로 벚꽃놀이 풍경
국회 후문 앞 윤중로 벚꽃놀이 풍경이정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국회 보좌진이 되려면 기꺼이 '꽃거지'가 될 각오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모든 일이 진흙탕 투성이에 전쟁터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초짜라는 양해, 구하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무조건 프로가 될 각오를 하셔야 보좌진 입성에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잠과의 싸움도 피할 수 없는 전쟁. 국감이 시작되면 하루 3~4시간 주어진 쪽잠과의 사투도 기꺼이 이겨내야 합니다. 특히 보좌진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특종 기자의 촉과 습작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바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씨를 뿌려 특종의 씨앗을 거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위통, 변비, 십이지장통, 두통, 손 저림, 불면증, 공황장애와도 싸워 이겨낼 면역력을 미리미리 키워야 합니다. 또한 질의서가 나올 때까지 수만 페이지의 자료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대박 꼭지가 나올 때까지 수만 시간의 기다림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쫓고 쫓기는 공수교대, 사소한 수십 건 민원의 욕바가지 싸움, 분석과의 싸움. 눈치 9단과의 싸움, 아픔과의 싸움 등등등.

다쳐도, 억울해도, 열 받아도, 속 쓰려도 그냥 참고 넘어갈 줄 아는 부처가 될 준비도, 예수가 될 준비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꽃거지면 어떻겠습니다. 부처도, 예수도 처음부터 꽃거지의 고행 길을 이겨내셨음을 기억하시면 그만입니다.

2~3일 국회에서 밤샘... 당연히 잠자리는 땅바닥

 국회 의원회관 1층 복도에 펼쳐진 미술품 전시회 모습
국회 의원회관 1층 복도에 펼쳐진 미술품 전시회 모습이정민

자, 지금까지 1년 동안 겪은 사소한 일들과 국정감사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회상해보면 허무함과 자괴감, 한숨밖에 안 나오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인 오늘, 2013국정감사 시즌 2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경험이 돈이 됐는지 그래도 마음은 가볍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나와 똑같은 경험과 사고를 칠 후배가 들어왔습니다. 저랑 띠동갑 친구이지요.

하지만 이 친구는 저와 천양지차입니다. 능력도, 성격도, 무게감도, 진정성도 참 뛰어난 친구입니다.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잠 못 자고 늘어진 꽃거지 행색에 옛 생각이 나 그저 웃음만 나오곤 합니다. 오자마자 이 후배는 3일을 집에 못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국회에서 잘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보통 보좌진들은 국정감사외의 시즌에는 정기국회, 법안, 보도자료, 인터뷰자료 등을 만드느라 일상을 보냅니다. 때론 2~3일 국회에서 잠을 청하는데 잠자리는 물론 의원실 땅바닥입니다. 푹신한 침대나 매트리스는 그래서 필수 아이템입니다. 하지만 이 어린 후배에게 차마 땅바닥을 권할 수 없어 6층에 마련된 침대 휴게실로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잠을 청하고 별일 없다 했더니 참 해괴망측한 일을 겪고 말았습니다.

6층 침대는 2층으로 되어 있어 시설 공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많이 자야 12명 정도 잘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후배가 잠을 자다 새벽에 이상해서 깼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판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 좁은 침대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을 청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것도 바짝 웅크린 채로 얼굴을 마주하고서 말이죠.

놀란 눈과 심장을 다독인 이 후배는 애써 '얼마나 잠을 자고 싶었으면, 그리고 오죽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었으면 내 옆에 와서 이렇게 해야만 했었느냐'고 자위했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저희 의원실 보좌진들은 너무 웃겨서 밥풀이 튀어 나올 정도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자고 있는데 새벽에 일어나보니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하고 자고 있는 내 모습을…. 크큭.

국회 보좌진, 아름다운 실패가 있기에 위대한 성공의 열쇠를...

 국회의원 신관 바깥 풍경
국회의원 신관 바깥 풍경이정민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고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얼마전 M신문 기사에서 국회 보좌진의 향응수수와 기타 청탁 등으로 꼴불견 실태를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겪은 1년의 정책보좌진 생활을 돌이켜볼 때 그럴 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죽 생활하고 있고요.

어찌됐든 저의 국정감사 시즌2가 이제 겨우 3일 지나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국회 정책보좌진들에게 작은 응원이나마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때론 욕도 얻어먹고 무시당하고 멸시까지 당하지만, 그러면서 얻는 게 더 많다는 걸 배우게 됩니다.

아름다운 실패가 있기에 위대한 성공의 열쇠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국회 정책보좌진은 그렇게 촉과 체력과 싸우고 있다는 걸 헤아려주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정민 기자는 민주당 문병호 의원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 #국회 보좌진 #비서관 #보좌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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