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와의 무전여행 96일을 이제 끝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안수
그는 통일동산 일대와 교하의 아파트단지 일대의 어린이 놀이터와 정자에서 백호와 밤을 보내는 노숙으로 지냈습니다.
가을은 깊어가고 밤이 점점 길어지는 상황에 그는 100여 일간의 길 위의 생활을 정리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에 혼자 몇 달간의 농활을 보내며 생각의 가닥이 풀리지 않으면 무작정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시골길을 몇 시간 걷고나서 머리가 희미해지는 상태를 경험했었는데 그 상태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대부분 그 문제의 결론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이미 내려놓고 다른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다시 되돌아와 처음 결론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그 결론을 확신할 수 있음이 다행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백호와 무작정 시골을 향해 길을 나섰던 것도 그때 길을 걸었던 그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100여일의 걷는 기간이 지났지만, 출발당시의 농로를 몇 시간 걸었던 대학생 때의 상황과 결론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시 살아야지.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체중은 20kg이 빠졌습니다. 회사의 사정이 나빠지는 지난 2년간 5kg이 빠졌고 집을 나온 지난 100여 일 동안 15kg이 빠졌습니다.
그는 지난 29일 카톡메시지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를 제게 물었습니다. 본인은 백호와의 숙식만 해결하면 된다고 했지만, 저는 그가 새출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이 젊은이의 사연을 포스팅하자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평소 동물권리에 관심을 가진 분께서 응원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주인공과 절친 백호에 대한 제 응원은 계속됩니다. 좋은 일 생길 것 같아요. _ 공주오빠" 아프리카 케냐 나쿠루에서 Kim's Poultry Farm이라는 닭고기 전문업체를 운영하고 계신 김기환 선생님께서는 아프리카에서 희망을 찾을 수도 있다고 제안해주셨습니다.
"큰 엄마품 같은 이해심 많은 아프리카에다 남은 삶 다 투자해 봐도 좋은데…." 기업 경영자들의 인맥, 정보, 홍보, 마케팅을 위한 커뮤니티를 이끌고 계신 이코퍼레이션의 김이숙대표님께서 메일을 주셨습니다.
"진도개 주인님 어떻게 도우면 되요?_ 김이숙"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대표 수백 명과 호형호제의 사이인 김 대표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신 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용기였습니다. 저는 진심어린 감사를 담아 답변을 드렸습니다.
"저는 간혹 드물게 이승에서 천사를 대면하곤 하는데 오늘도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게 가장 눈부신 날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분은 김이숙이라는 분입니다.33살의 순박한 청년입니다. 8년간 사업을 했지만, 조직을 리더하기보다 제작 실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분이 원하는 것은 단지 7살의 진돗개 백구와 자신이 숙식을 해결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이 분의 방송영상제작분야, 또한 웹솔루션개발에서 능력을 발휘했던 전문가였던 만큼 이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이면 좋고 이 분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얼마간의 인건비를 지급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인건비는 이 분이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분에게 일을 시켜보고 충분히 그 회사에 공헌이 된다고 여겼을 경우에 그 회사의 책임자가 결정하면 될 일이다 싶습니다. 영상제작이 필요한 회사나 웹관리가 필요한 회사에서는 좋은 인재 한명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만으로도 그 분의 가슴온도는 5도쯤 이미 상승했을 것입니다." 고맙게도 김 대표님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계속 마음에 걸리네요. 이안수대표님께서 마음 쓰시는 것을 보니. 일자리 하나 제공하는 것이 사람 하나 살리는 것인데, 제가 계속 찾아볼게요.""이안수대표님! 백구 주인님 '독립광고' 회사 추천 드릴까요?" "숙식은 '우주'에서 할 수 있는지도 알아볼게요." 김이숙 대표님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자정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분입니다. 이렇듯 하루를 초단위로 나누어서 사시는 분이 이 일을 계속 팔로우업해주셨습니다. 그 사이 이 분의 사연을 보내드린 두레샘의 안재영 대표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북경에서 개최된 '2013 Beijing Design Week'에 참여하고 지금 막 공항에 내렸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한국땅에 발을 딛자마자 전화를 주신 정성도 고맙지만 거두절미하고 그 청년을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건 없이 겨울을 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고마움에 목이 멨습니다. 이어서 헤이리 크레타의 김기호 작가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 청년, 보내보세요.""누군가 형편이 되는 분이 있으신가요?" "제가 어찌해보아야지요. 겨울은 나야하잖아요?""그렇지만 김선생님께서 어찌합니까?" "방은 우리 부부밖에 없으니 빈방을 치우고, 백호는 마당이 너르니 불편이 없고, 그 청년은 우리 레스토랑에 함께 일해야지요. 뭐. 어떡해요." 김기호 작가는 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크레타 일을 도우면서 평면과 입체작업을 하는 화가입니다. 김 작가님께 이 젊은이에 대한 형편을 알린지 3일 만에 전화가 온 것입니다.
저는 3일의 간극동안 김 작가님이 부인과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을지가 짐작이 갑니다. 청년을 수용할 썩 좋은 형편이 되지 않지만, 노숙하는 젊은이에 대한 연민의 정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낯선 젊은이에게 방을 내주는 불편함과 일자리를 나누어야하는 난감함에도 불구하고 3일간 숙고의 결과는 사람의 도리를 택한 것입니다.
저는 김기호 선생님께 안재영 선생님의 조건 없는 수용을 알려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 내용을 알려드리자 김작가께서도 그제야 안도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여전히 다급하게 일자리를 찾고 계실 김이숙 대표님께 기쁜 마음으로 메일을 썼습니다.
"김이숙 대표님, 인디씨에프, 우주 사장님들께 소개해드리겠다는 선생님의 메일을 받는 순간, 얼마나 감격이었던지요. 그 따뜻한 마음을 그 젊은이에게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얼마나 큰 용기가 될 수 있을지…….그 사람은 세상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꼈고 김대표님의 그런 관심만으로도 그 젊은이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이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대표님! 그 젊은이에게 좋은 일이 생겼어요. 마음씨 고운 한 중소기업의 대표께서 그 젊은이에게 기회를 주기로 약속했답니다. 그래서 내일 함께 만나기로 했어요. 헤이리의 제 지인 화가께서는 다른 곳에서 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부인 가게에 취직을 시켜주기로 약속했고 백호가 지낼 수 있는 마당과 그 분이 계실 수 있는 방도 하나 제공해주기로 약속했고요.그러니 이제 안심하셔도 되요. 이 일로 그 젊은이가 아니라 제가 세상의 온기를 확인할 수 있어서 정말 제가 치료받은 느낌입니다. '비정사회'가 아니라 '온정사회'로 고쳐서 글을 다시 써야 할 것 같아요." #3저는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 청년에게 만나자는 카톡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만남은 안재영 대표님께서 입국한 다음날 바로 모티프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젊은이와 함께 온 백호는 동갑인 저희집의 해모와도 다툼 한번 없이 친구가 되었습니다.